자주 뒤집으면, 독자는 멀미 난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초고에 역접이 여러 번 반복되나? 퇴고할 때 대거 해소하라!

(주)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2.07.13 09:55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와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역접이 잦은 글은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그런 글의 독자 중 상당수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집중해서 읽는 독자 중 일부는 자주 번복되는 텍스트 위에서 멀미를 겪는다.
리더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수필이다. 일상생활을 가볍게 풀어낸 수필은 독자에게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 필자를 독자에게 친근한 존재로 전달한다.


냉장고의 즐거움
[원래 물건 욕심 없는 성격] 나는 물건을 사는 일에 대체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중략) 비싼 차를 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중략) 옷도 마찬가지다. (중략)
그나마 열심히 모았던 것이 있다면 음반이다. (중략) 집에서 시디나 바이닐로 음악 듣기는 한동안 나의 좋은 취미였는데, 갑자기 오디오 장비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나로서도 돌이켜보면 조금 의아할 때가 있다. (중략) 당시의 나는 책 한 권에 영향을 받아 더욱 과감한 결정을 내렸던 듯하다. (중략)

[더욱 미니멀 생활 추구] 오디오 외에도 많은 물건을 처분했는데, 옷은 절반 정도를 없앴다. (중략) 그리고 또 한 가지 없앤 것은, 양문형 냉장고였다. 없앴다기보다는 사지 않았다는 편이 정확하다. (중략) 조그마한 붙박이 간이 냉장고가 있었다. (중략) 두어 달 살아보니 역시나 간이 냉장고만으로도 괜찮았다. (중략)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한참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냉동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중략)

[미니멀 생활 흐름을 거슬러 예외 지름] 결국, 새 양문형 냉장고를 주문했다. (중략) 요즘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중략)
[양문형 냉장고를 쓰고 있지만, 미니멀 생활을 지향한다.] 물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그 밖의 무엇에 대해서든, 욕심을 하나하나 줄여나가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생명에 대한 욕심마저 딱 버리고 죽으면 정말로 멋진 삶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치관과 반대로 양문형 냉장고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 그런데 고작(이라고 하기에는 요즘 너무 고마워서 미안하지만) 냉장고 정도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나 반성할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또 어찌 보면 만수무강할 명분(?)이 있다는 뜻도 되니 나쁠 것 없다. (하략)

출처: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문학동네, 2020, 36~46쪽

이런 측면에서 리더는 수필 쓰는 법도 익히면 좋다. 적어도 수필을 어떻게 작성하면 좋은지는 알아야 한다.
이제 ‘역접’과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라는 키워드로 다음 수필을 읽어보자. 꺾쇠표 속 문구는 내가 추가한 것이다. 문단은 여러 개를 합쳤다.

필자는 역접을 다음과 같이 세 번 넣었다. 원래 물건 욕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미니멀 생활을 더 추구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거슬러 양문형 냉장고라는 예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필자는 가치를 미니멀 생활에 두고 있으며 양문형 냉장고의 행복을 반성한다. 그러나 반성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예인이고 팬이 많다. 팬들은 워낙 필자를 좋아하니까 역접이 잦더라도 그의 사생활을 기꺼이 읽을 것이다.

역접 많은 글은 주름도 많아
그러나 리더가 자신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수필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자주 뒤집는 전개는 피하기를 권한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역사 사실을 서술한 글의 일부다.

[원문]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서기 626~681)은 유언으로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시간과 용력을 들이지 말고 동해의 대왕암에 화장을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삼국을 통일하는 혼란기에 자신의 무덤 때문에 국력이 소모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의 묘비만 경주 어딘가에 세웠다. 학자들은 대체로 사천왕사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천왕사가 폐사되면서 문무왕 비석도 사라졌다. 문무왕의 비석은 1796년에 발견되어서 청나라 학자가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이 망하는 와중에 또다시 사라졌다. 다행히 1961년에 그 일부가 경주 동부동의 민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사라진 비석의 나머지 일부분도 2009년에 동부동의 다른 집 마당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비석의 표면이 반질반질해 빨래판으로 쓰인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표면의 글자들은 잘 남아 있었다.
출처: 강인욱, 〈테라 인코그니타〉, 창비, 2021, 171쪽

이 글은 길지 않은 분량에 역접 연결사 ‘하지만’이 세 군데 들어갔다. 의미상 역접인 ‘다행히’도 있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전개 방식이다. 이 글은 게다가 독자한테 주요 사실을 정리해서 주지 않는다. 즉, 문무왕비 비석 중 얼마나 남아 있는지 독자는 알 길이 없다.
나는 다른 자료를 조사해서 [대안1]과 같이 정래해봤다. 역접의 주름을 다 없앴다.

[대안1] 현재로 전해진 문무왕 비석은 세 부분이다. 각각은 하부 대편(大片) 하나의 실물과 상부 대편 하나의 탁본(앞 뒤 두 장), 두 글자가 새겨진 소편(小片) 실물 하나다.
하부 대편과 상부 대편은 1796년(정조 20)경 경주부윤 홍양호에 의해 발견됐다. 두 대편은 이후 각각 앞면과 뒷면 두 장씩 넉 장의 탁본으로 떠졌다. 탁본 넉 장은 청나라로 전해져, 1832년에 편집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실렸다. 두 대편은 이후 다시 사라졌다가 하부 대편만 1961년 경주 동부동의 민가에서 발견됐다. 소편은 2009년에 동부동의 다른 집 마당에서 나왔다.
한편 1961년 하부 대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넉 장의 탁본이 네 개의 비석 조각에 대해 각각 제작됐다고 여겨졌었다.

한편 [대안1]을 정리하면서 참고한 자료 중 하나가 [대안2]다. [대안2]는 글의 가운데에 오래 이어져왔던 오해를 넣었다. 그 오해가 어떻게 해소됐는지도 설명했다. 이런 전개 방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대안1]처럼 오해를 끝 부분에 붙였다.

[대안2]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비는 일찍이 무너졌고, 현재까지 대편(大片) 2개, 소편(小片) 1개가 발견되었으나 대편 1개는 원석이 전하지 않는다. (중략) 대편 2개는 1796년(정조 20)경 경주부윤 홍양호(洪良浩)가 발견하였다고 하며, 이때 탁본이 청나라의 유희해(劉喜海)에게 들어가 《해동금석원 海東金石苑》에 실리게 되었다. 《해동금석원》에서는 탁본이 4장임에 근거하여 제1·2·3·4석으로 호칭하여 4개의 비편으로 보았다. (중략) 1961년 경주시 동부동 주택에서 홍양호가 발견한 대편 2개 중 비신 하부에 해당하는 대편 1개가 발견됨에 따라 《해동금석원》의 제1석과 제4석은 비의 상부 앞면과 뒷면에 해당되며, 제2석과 제3석은 비의 하부 앞면과 뒷면에 해당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퇴고 작업을 할 때에는 먼저 짜임새와 전개를 더 낫게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해야 한다. 문장 수사법과 정확도, 적합한 단어 선택 등은 나중에 따질 부분이다. 글의 전개가 원활한지 점검할 때면, 역접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부적절하게 역접된 문장들
앞 문장을 뒤집는 문장 형식이 남발되고, 종종 틀리게 쓰인다. 역접 관계를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례에는 심리적 동기가 깔린 경우가 있다고 나는 추정한다. 바로 역접 다음 문장을 강조하고자 하는 심리이다. 이를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자.

[원문] 만사나레스 자치단체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중 백미는 필라스보나스성과 라아순시온 교구성당이라 할 수 있다. 두 건축물은 각각 1979년과 1991년에 스페인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곳에 있는 많은 문화유산이 필라보나스성과 라아순시온 교구성당으로 인해 존재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문화유산이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안처럼 써야 한다.

[대안] 만사나레스 자치단체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필라스보나스성과 라아순시온 교구성당이다. 두 건축물은 각각 1979년과 1991년에 스페인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다음 사례도 역접 이후 사실을 두드러지게 전하고자 하고자 서술된 문장으로 보인다.

[원문] 파리정치대학은 대학평가기관 QS의 2021년 세계대학순위에서 242위에 올랐다. 하지만 전공별 순위에서 정치학이 2위를, 사회정책·행정학은 23위, 사회학 28위, 개발학 40위, 법학은 50위에 올랐다.
둘째 문장은 ‘하지만’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세계대학순위 242위’와 ‘정치학 2위’ 등의 순위가 상반된다는 의미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의 수많은 대학 중 242위가 변변치 않은 것일까? 그렇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대안1]이 정확하다.

[대안1] 파리정치대학은 대학평가기관 QS의 2021년 세계대학순위에서 242위에 올랐다. 전공별 세계대학 순위에서는 정치학이 2위를 차지했다. 사회정책·행정학은 23위, 사회학 28위, 개발학 40위, 법학은 50위에 올랐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전공별 순위를 강조하는 [대안2]도 있다. [원문]과 [대안2]를 비교하면, ‘하지만’이 ‘특히’로 적절하게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안2] 파리정치대학은 대학평가기관 QS의 2021년 세계대학순위에서 242위에 올랐다. 특히 정치·행정 분야가 높게 평가된다. 전공별 세계대학 순위에서는 정치학이 2위를 차지했다. 사회정책·행정학은 23위, 사회학 28위, 개발학 40위, 법학은 50위에 올랐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