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의 입법권 방기, 이대로 둘 것인가

[박선춘의 여의도 빅데이터]

씨지인사이드 박선춘 대표 입력 : 2022.08.03 09:13
▲박선춘 씨지인사이드 대표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의원내각제 요소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부의 입법권, 즉 법률안 제출권이다.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폐지를 주장하는 견해가 많다. 그래서 헌법 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폐지는 단골 메뉴처럼 의제에 오르기 일쑤다.

2017년 초의 일이다. 정부는 국회 헌법개정특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정부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입법 수요를 알림으로써 입법권이 충실히 행사되도록 돕는다는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법률안 제출권이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사실 필자도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입법과정에 행정부가 관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 의견이 입법과정에 충실하게 반영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방기되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헌법이 행정부에 부여한 입법권 행사 관련한 통계를 살펴보자. 16대부터 21대 국회까지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전체 건수는 제16대 국회 2507건에서 제21대 국회 15989건으로 5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행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 건수는 505건에서 494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 제출된 전체 법률안에서 차지하는 행정부 제출 법률안의 비중은 16대 23.7%에서 21대 국회는 3.1%로 격감했다.행정부의 입법권 행사 소홀, 피해는 국민 몫이처럼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 건수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소위 ‘우회입법’ 또는 ‘청부입법’ 때문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복잡한 정부 내 법률안 제출 절차를 피하고자 하는 입법 편의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부가 국회의원을 통한 우회입법애 의존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부처 간 의견과 쟁점이 조율되지 않은 채 소관 부처의 부처이기주의에 매몰된 법안, 위헌적 요소가 법제처 심사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법안이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투성이 법안에 대해 행정부는 책임성 있게 대응하지 않음에 따라 졸속으로 입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행정부의 법률안 제출 건수 감소에 비례하여 의원발의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베끼기 입법, 선심성 입법, 건수 중심의 졸속 입법이 국회에 만연한 지 이미 오래다. 

예산확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 규제심사도 받지 않은 입법도 부지기수다. 전반기 2년을 갓 경과한 21대 국회의 법률안 제출 건수가 160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1대 국회는 3만 건을 넘을 수도 있다. 공휴일을 포함해도 하루에 20건이 넘는 법률안이 제출되는 셈이다. 정상적인 법률안 심사가 사실상 곤란한 수준이다.

정상화가 시급한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은 영구히 부여된 것이 아니다. 제대로 행사되지 않으면 그 권한을 다시 회수하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이 보장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회수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기관 조사에서 국회가 9년째 꼴찌를 못 면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회의 입법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졸속 입법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실제 법률의 집행기관인 행정부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 행정부처는 우회입법의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행정부처 간 법률안 조정·협의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행정부가 국회의 법률안 심사과정에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대응해야 한다. 법제처도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부의 입법권을 국민이 회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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