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흘려 쓰지 말고, 각 잡아 쓰라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 개별 나열한 뒤 전모 알려주는 대신, 그 역순으로 전개해야

글쟁이(주) 백우진 대표 입력 : 2022.08.09 11:01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이 XXX야, 다 해쓰 임마!”

이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최익현(최민식 분)이 경찰한테 내지른 대사다. 수갑이 채워져 붙들려 간 최익현은 경찰서에서 서장과의 친분을 이렇게 과시한다.

최익현은 부패 세관 공무원 출신 건달이다. 의사 표현·전달 방식에 요령 따위는 없다. 염불(업무)보다 떡밥(마약)을 챙기는 캐릭터이니, 의사를 효율적으로 표명하는 기법에 관심이 없다.

내용을 전하는 기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말한다.
“내가 느그 서장하고! 어?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임마!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이 XXX야, 다 해쓰, 임마!”

영화에서 최익현은 줄줄 흘려서 말하는 반면 내가 바꾼 대사는 ‘각’이 잡혔다. 여기서 ‘각’은 ‘내가 느그 서장하고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는 관계다. 그 관계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어제의 일과가 제시된다.

언론계와 출판계에서 ‘각’은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을 가리킨다. ‘각을 잡아 쓰기’는 두괄식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되, 두괄식보다 더 포괄적이다. (그에 비해 일반적으로 ‘각을 잡고’는 ‘본격적으로’나 ‘진지하게’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다. 지난 한 달을 정리하는 글을 쓴다고 하자. 줄줄 흘려 쓴 글은 개별 사건을 정리해나간다. 반면 각을 잡아 쓴 글은 예컨대 ‘진전은 없었지만 향후 활동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서두에서 말한다. 이는 두괄식에 가까운 문장이다. 각을 잡아 쓴 첫 문장의 다른 예를 들면, ‘뫼비우스의 띠 같은 한 달이었다’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전체를 아우르는 두괄식은 아니지만, 한 달이 어땠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상하 의원을 추모한 두 글 비교
이제 상자 형식으로 인용한 두 글을 비교해 읽으면서 각 잡고 쓰기와 줄줄 흘려 쓰기가 어떻게 다른지 상세하게 살펴보자.
두 글은 모두 한 인물을 추모한다. 그 인물은 이상하(1937~2005) 의원이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64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사회부장, 체육부장,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장성군-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박태영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언론계로 돌아와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 무등일보 회장 등으로 일했다.

줄줄 흘려서 쓴 오른쪽 글부터 읽어보자. 서로 친해진 시기와 계기, 매개체는 술과 골프, 이상하 프레스센터 이사장, 특유의 친화력 발휘, 안정과 동시에 개혁 추진 등으로 전개된다. 개별 사건을 줄줄 흘려서 쓰기만 하지 않고 뒷부분에서 매듭을 짓기는 한다. 이 내용으로 각을 잡아서 쓴다면 독자에게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도입부를 이렇게 잡으면 어떨까.

‘이상하는 ‘정중동’의 리더였다. 즉, 안정을 이루면서 동시에 새로운 방향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안정의 매개체는 술과 사람을 배려하고 즐겁게 하는 친화력이었다.’

왼쪽 글은 ‘이상하리만큼(?) 신비스러운 존재’라고 각을 잡고 글을 시작한다. 이후 그 수식어를 설명해나간다. 그는 담대하고 어그레시브해 보였다. 사회부장으로서 칼럼을 쓸 때 매우 공격적인 표정의 사진을 즐겨 썼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가녀렸다. 약해질 때는 형편없이 무너졌다.

왼쪽 글은 중간에 새로운 각을 잡는다. ‘그는 기(氣)의 인간이었다’는 각이다. 이어 그의 기를 경험한 사건을 들려준다.
각을 잡아 쓴 사례를 하나 더 공유한다. 자크 아탈리가 쓴 〈미테랑 평전〉 중 미테랑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스타일에 대해 쓴 부분이다. 평전은 2005년에 출간됐고 국내에는 2006년에 번역됐다.

미테랑 대통령의 ‘관계’를 각 잡아 쓰면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은 1981년 사회당 출신 중 최초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파 정당의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 ‘좌우동거체제’를 만들어 운영했다. 1993년 유럽연합(EU)을 발족시킴으로써 유럽 통합에 기여했다.
저자 자크 아탈리는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1974년 30대 초반에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변신했다. 1981년 사회당 집권 이후 1991년까지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아탈리는 2장 ‘국가를 통치하다’를 ‘보좌관들’ ‘아첨꾼들’ ‘기자들’ ‘문인들’ ‘여자들’ ‘정보 수집’ ‘회의 소집’ ‘결정 방식’ ‘정당들과의 관계’ 등 절(節)로 나눈 뒤 각각 각을 잡아서 서술한다.
‘보좌관들’의 서두를 아탈리는 다음과 같이 쓴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참지 못했다. 그는 누군가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멀리했다.’
‘기자들’에 대해서는 ‘그를 군주 취급하고 그의 궁정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읽으면 미테랑은 화가 치밀어 언론을 더욱 노골적으로 멸시했다’고 시작한다.
‘여자들’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요약한 글을 도입부로 잡는다.
‘그는 비록 나에게 여자들을 조심하라고 주문했지만, 그리고 그녀들의 투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들을 차별한다는 의심이 조금도 들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함께 일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각 잡아 쓰기는 글 전체에 활용 가능하다. 몇 개 문단 단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초고를 쓴 다음에는 흘려서 쓴 부분이 있는지 점검해보자. 그 부분의 각을 어떻게 잡을지 대안을 찾아보자.

“사는 게 별게 아냐, 자주 만나야지…”

이상하라는 이름 석자는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신비스런 존재로 남아 있다.
그처럼 담대하고 어그레시브(그가 즐겨 강조한 단어이기도 하다)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토록 섬세하고 가녀린 구석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중략)

굵고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허장성세와 위선이 배인 지세, 책략의 인간됨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물의 먼 데를 꿰뚫어보는 안목도 있었고 더러는 이 풍진 세상 어리석은 중생(?)들의 어리석고 치졸한 할퀴기와 싸움을 통찰하고 내려다보는 명안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회고록 같은 건 쓸 자격이 없어. 속물이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선승 탄허가 생고기를 씹는 장면을 연상했다. 스스로를 속물로 단정할 수 있는 정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 그 단호한 한마디에 이상하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부장으로서 칼럼을 쓸 때 매우 공격적인 표정의 사진을 즐겨 썼다. (중략) 그는 모름지기 기자는 공격성이 본질이고 그 공격성을 통해 직업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약해질 때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회부장에서 체육부장으로 발령이 난 날 엉엉 우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우리 후배들이 거드는 위로의 주석에서 잘 견디던 그가 타사의 동료 한 사람과 얼굴이 마주치자 “나 체육부장 됐어…” 하더니 갑자기 오열하는 것이었다. 인사발령의 충격으로 소리 내어 통곡한, 내가 목격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람.

그는 기(氣)의 인간이었다.
내가 실로 고백하기 싫은 부끄러운 사건 하나를 털어놓아야 하겠다. (하략)
출처: 김충식, 〈사람을 몰고 다니는 유쾌한 사람〉, 어떤 이의 꿈, 2006, 245~246쪽

상하 형 밑에서 누구나 하나가 된다

내가 이상하 형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된 것은 1985년쯤인가, 한국일보 정치부장이 되었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당시 상하 형은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임기 후반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사실은 타고난 술꾼이라는 공통점이 서로를 끌어당기게 한 인력이 아니었나 싶다.
술자리와 더불어 가까워진 상하 형과 나의 우정은 우연치 않게 골프동호회의 같은 멤버가 되면서 더욱 두터워져 갔다. (중략)

김영삼 대통령 후보진영에 투신했다가 선거에서 승리한 뒤 1993년 공보처장관에 임명된 나는 상하 형을 프레스센터 이사장직에 추천했고, 평소 상하 형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김 대통령은 흔쾌하게 결재했다. 그것은 상하 형의 범상치 않은 저력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스센터는 언론 유관기관이기 때문에 언론계 출신들이 책임자가 되곤 했지만, 정부기관(당시 공보처)의 산하단체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영향력과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특징이었다. (중략)

그러나 상하 형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프레스센터는 어느 모로 보거나 가장 잘나가는 단체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의 특유한 친화력이 공무원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허물고 센터 내 직원들을 한몸처럼 뭉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중략)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 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데 강한 것이 일반적인 유형이라고 할 때, 상하 형은 안정에 반하는 개혁적 추진력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략)
출처: 오인환, 같은 책, 275~276쪽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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