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잡고, 사실은 그에 따라 취사선택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소설뿐 아니라 자기소개 글 등도 시각 정한 뒤 쓸 수 있어

(주)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2.11.16 11:01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 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구요. 우리 집 식구라구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어머니와 나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 날 뻔했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중략)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세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나더러는 ‘과부의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어머니하고 결혼한 지는 일 년 만이고요. (중략)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 생각은 안 나요. 아버지 사진이라는 사진 나도 한두 보았지요.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중략) 그 사진도 본 지가 퍽 오랬는데, 이전에는 그 사진을 어머니 책상에 놓아두시더니 외할머니가 오시면 오실 때마다 그 사진을 치우라고 늘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어데 있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번 어머니가 나 없는 동안에 몰래 장롱 속에서 무엇을 꺼내 보시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것이 아마 아버지 사진인 것 같았어요.

인용된 글은 주요섭이 193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일부다. ‘리더의 글쓰기’를 주제로 한 글에서 웬 단편소설?’ ‘소설 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리더는 거의 없잖아?’ 많은 독자가 제기할 법한 의문들이다.
이 단편소설을 인용한 것은 ‘글을 전개하는 시점(視點) 또는 시선, 시각, 앵글’로 이어지는 실마리로 삼기 위해서다. 이 글은 모두 알다시피 삼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쓰였다. 작가는 소설을 일인칭 화자 시점으로 쓸 수도 있었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전개할 수도 있었다. 같은 이야기도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처럼 당사자가 아닌 꼬마 여자 아이의 동심과 시선에서 서술하면 새롭게 된다.

오리아나 팔라치의 남다른 앵글

픽션에서 현실로 서술 대상을 옮기자. 현실을 다루는 글도 시점을 잡아서 쓸 수있을까? 전설이 된 오리아나 팔라치(1929~ 2006)가 모범을 제시했다. 그는 서술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참신한 기사를 작성했다.
팔라치는 누구인가. 이탈리아 출신으로 세계 각국의 권력자를 공격적으로 인터뷰하고 신랄한 기사를 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세계 각국을 누비며 권부의 핵심 인물을 선택적으로 만났고, 그래서 그와 인터뷰를 하지 않은 사람은 세계적 인물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팔라치는 열여섯 살 때부터 기사를 썼다. 그가 어린 나이에 언론계에 입문하게 된 것도 현상을 새롭게 포착해 드러내는 그의 앵글 덕분이었다. 그는 신문사에서 시험 삼아 한번 자신에게 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문사 간부의 지시는 새로 생긴 나이트클럽을 취재해오라는 것이었다. 짤막한 한 줄로도 충분했을 기사였다.

그러나 팔라치는 딸을 열성적으로 보호하는 이탈리아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썼다. 이와 관련해 팔라치는 자신이 “전쟁이 끝난 후 여름을 맞은 이탈리아 사회의 한 단면을 살짝 묘사했다”며 “어머니들은 저마다 자신의 딸에게 약혼자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딸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딸과 나란히 서 있었다”고 들려줬다.

그는 “남자가 여자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여자에게 춤을 청하는 것이 우습다고 생각해 기사 전체를 아주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풍속을 마치 이방인이 본 것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풀어낸 것이다.

팔라치는 필요하면 마치 단편소설을 쓰듯 기사를 작성했다. 피렌체에 있는 낡은 옛 수녀원 건물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수녀원 뜰의 벚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그 벚나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수녀원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래도 시점 또는 앵글 잡기는 문예적인 글에나 활용되는 방법 아닌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내 사례를 통해 답한다. 나는 경제와 주식, 마라톤, 우리말 등 영역에서 책을 썼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분야의 책을 번역했다. 책마다 저자나 역자 소개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개할 대상은 동일 인물이되 책의 주제에 따라 사실을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봤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 중 몇 권의 저자 또는 역자 소개를 소개한다.

〈단어의 사연들〉 저자 소개
어떤 영역에 관심을 둘 경우 대개 보통 수준을 넘어선다. 특출함을 지향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그 경지가 특이함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단적인 예로, 마라톤을 즐기는데 맨발로 즐긴다. 자신의 특이함은 그러나 근본에 접근해 깊이 파고드는 태도와 습성의 결과라고 자평한다. 아울러 자신의 특이함이 특출함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다른 사람들이 아직 다루지 않은 특유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 단어를 실마리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생각을 소리에 실어내는 방식을 포착해 풀었다. 또 주로 영어와 비교해 우리말의 고유한 특성을 이야기했다. 사람은 언어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언어에 대한 생각은 사고에 대한 생각이며 언어 공부가 사유의 조직화·구조화의 기초라고 본다.

단어는 오래된 관심사였다. 국어사전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우리말을 궁리했다. 20여 년 동안 주로 활자 매체에서 기사를 썼다.
요즘 글쓰기 강사로 일한다. 수십 년간 길러온 글쓰기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영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한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을 번역했다. 글쓰기 분야 책 〈일하는 문장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글은 논리다〉를 썼다.

〈나는 달린다, 맨발로〉 저자 소개
달리면서 알게 된 몸에 대한 지식을 실천하면서 숙면과 쾌변 효과를 얻었고, 디스크 증상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 마라톤 입문 10여 년 만에 이제야 달리기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깨치고 있다. 그러면서 주법 가다듬기와 달리면서 명상 효과 얻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30여 회 완주했다. 개인기록은 3시간 37분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같은 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첫 번역서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동아일보, 중앙일보 포브스코리아·이코노미스트, 재정경제부, 한화투자증권 등에서 기사를 쓰고 자료를 작성하고 교열·편집했다. 포브스코리아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영어 번역 기사를 감수하는 일도 했다. 그러면서 영어 텍스트를 문맥에 따라 정확하게,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단어와 문장으로 옮기는 경험을 쌓았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일하는 문장들〉, 〈그 때 알았으면 좋았을 주식투자법〉, 〈안티 이코노믹스〉 등의 책을 썼다.
리더는 글로 자신을 소개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시점 또는 앵글부터 떠올리라. 컵도 보는 방향에 따라 원이 되기도 하고 직사각형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컵보다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중 어느 모습을 부각할지 먼저 정하라. 서술할 내용은 그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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