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슬픔·분노 경청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서동욱 기자 입력 : 2022.12.01 09:25

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10·29 이태원 참사는 재난과 안전에 대한 국가적 대응체계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고였습니다. 경제대국, 문화강국, 방역강국을 자부했지만,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취업·집값 등 무한경쟁을 견뎌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그 짧은 축제조차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겪은 뒤늦은 후회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데 자괴감이 커집니다. 호텔 옆 좁은 골목길 보행을 방해하는 불법 증개축 건물이 10년 가까이 방치됐고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과 행정당국은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8년 전 304명의 어린 목숨을 잃고도 바뀐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권의 접근 방식 또한 8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야야는 이태원 참사 직후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위해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지만 국민의힘은 경찰의 부실대응에,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을 비롯한 현 정부의 실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희생자의 명단 공개는 이번 참사를 정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명단을 올린 매체는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논리를 폈지만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도 유족의 뜻을 거스르는 방식은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참사를 겪고도 제대로 된 매뉴얼과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재발 방지는 공허한 외침입니다. 세월호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국민안전처’의 출범이었습니다. 당시 사고 수습의 책임을 졌던 해경은 행정안전부의 안전 담당, 소방방재청과 함께 안전처에 합쳐졌습니다. 하지만 안전처는 3년 만에 해체됐고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지난 11월 22일 처음 공식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유족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이날 대통령실 측은 특수본 수사 결과 국가 책임이 드러나면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유족과 부상자에게 일괄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유족들의 마음을 털끝만큼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경청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균형 있는 조사로 법과 제도의 맹점을 살피고 이러한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철저히 돌아보길 기대합니다.
sdw7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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