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법제화 직진할까, 멈출까

[법으로 보는 세상] 노사 찬반 속 노동부 재고 요청,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 커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입력 : 2023.03.06 11:28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월 2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노란봉투법 환노위 통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다. 근로자의 민·형사상 면책 범위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범위를 대폭 넓히고 노조 교섭 대상인 사용자의 범위는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했을 경우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고,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업체 사용자와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한다.

노란봉투법은 제19대, 제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처음 발의된 지 8년 만에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게 됐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서 나온 ‘노란 봉투’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한 달 뒤인 5월 고용노동부에 구조조정안을 신고, 6월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는 정리해고에 반발해 8월까지 두 달여간 공장 점거 파업을 벌였지만, 정리해고를 되돌리지 못했다.

▲ 2009년 6월 16일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쌍용차 직원들이 경기도 쌍용차 평택공장에 출근을 강행키로 한 가운데 직원들과 파업 중인 노조원의 가족들이 팽팽하게 대립을 펼치고 있다.

▲2015년 6월 8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쌍용차 범대위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정리해고 6년, 쌍용차 해고자 187명 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쌍용차와 경찰은 파업을 주도한 노조 관계자들을 상대로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2월, 1심은 쌍용차 노사가 회사와 경찰에 약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 시민이 언론사에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이 담긴 노란 봉투를 보냈다. 4만7000원씩 10만 명이면 배상액을 모을 수 있다며 십시일반으로 배상액을 모으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아름다운재단이 주도해 모금이 시작됐고, 가수 이효리 씨가 동참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금 111일 만에 총 4만7000여 명이 참여해 모금액 14억7000만원이 달성됐다.

노란 봉투 캠페인은 배상액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를 입법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5년 4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34명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노조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노란봉투법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른 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은 하청 노동조합 집행부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인당 94억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손배액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노란봉투법’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9월 정의당이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해 당론으로 채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7대 입법 과제’에 노란봉투법을 포함시켰다. 법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었다.



사용자·노동쟁의·노동자 손배 면책 범위 넓혀


환노위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법 2조와 3조의 내용을 수정했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 사용자,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노동쟁의 등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개정안은 기존법에서 정의 내린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범위를 넓히고, 배상 청구에 있어 면책 조항을 늘렸다.

현재 노조법 2조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업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도 포함했다. 하도급 관계에서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이때 원청 사용자는 유급 노조 활동을 보장해야 하고, 단체교섭을 게을리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 원청 책임, 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린 2022년 9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석자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개정안은 또, 노동쟁의 범위도 넓혀 그동안 불법으로 판단해온 쟁의 행위 일부를 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노조와 사용자 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규정하는데, 개정안은 여기서 ‘결정’이라는 단어를 없애 근로조건 자체만을 두고 쟁의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노동쟁의 범위에 해고자 복직, 체불임금 청산, 정리해고 등이 포함된다.

노조법 3조와 관련해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의 손해배상 면책 범위도 넓혔다. 개정안에는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때 각 손해배상 의무자를 구별해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손해를 사람별로 일일이 따져 책임을 묻도록 한 것이다. “과도한 손해배상 폭탄에 의해 노조를 말살하거나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삼권을 없애는 형태로 손해배상 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같은 조항을 두고 야당과 노동계는 이 법이 노동자의 권리인 합법 파업을 보장할 것으로 보지만,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으로 우려한다.



노동계 “환영…의미 있는 진전”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의 국회 환노위 통과를 환영하며 국민의힘도 법안 처리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으로 고통받고 희생당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피로 일궈낸 결과”라며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해 숨바꼭질을 해야 하고, 정당하고 적법한 파업을 하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노조법상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한 노조법 2·3조 개정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과 불평등의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만든 것일 뿐”이라고 평가하며 환노위 처리 과정에서 다수가 퇴장한 국민의힘을 향해 “비정규직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안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나오자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이 헌법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거부한다면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영계 “산업생태계 악영향”…정부도 “재고 촉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관련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경영계는 반발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노란봉투법은 직접적인 근로 관계가 없는 하청 노조와 원청기업을 상대로 크고 작은 노사 분쟁을 촉진시키는 파업 조장법”이라며 “폭력과 방해를 일삼는 강성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경영 압박법”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어 “2019년 세계 경제포럼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노동 유연성은 141개국 중에 97위, OECD 36개국 중에 3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며 “가뜩이나 강성 노조로 인해 기업하기 어려운데 일자리마저도 말살시켜 국가 경제의 발목을 부러뜨리는 망국법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노조법 개정은 산업현장 혼란을 가중시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와 근로자, 협력업체 등에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노조법 개정안은 사업장점거, 생산방해 등 노조의 불법파업을 보호하고, 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업체에 대해 하청 노조가 파업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내용”이라며 “우리 경제와 산업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의 국회 환노위 통과 소식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즉각 재고를 요청했다. 이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통과된 개정안이 과연 노동조합법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매우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개정안은 법치주의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에 담긴 사용자 개념 확대 부분을 거론한 것. 이 장관은 또, “노조의 불법에 대해 손해배상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면서, 피해를 받는 사람보다 피해를 준 사람이 더 보호되는 모순과 불공정을 초래하게 된다”며 노조의 불법행위가 만연해질 것을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노란봉투법이 환노위를 통과하기 전날인 지난달 20일에도 기자회견을 갖고 단체교섭 장기화, 교섭체계 대혼란, 사법 분쟁 증가 등의 부작용을 들어 노란봉투법 재고를 촉구한 바 있다.



국회 통과 가능성 높지만 시행은 미지수


▲ 임이자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간사가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상정과 관련해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노란봉투법은 국회 환노위에서 지난달 21일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 시작부터 ‘불법파업 조장법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걸고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 위원장은 거수로 표결을 강행했고, 전 위원장의 진행에 반발해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환노위 의결로 노란봉투법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의 김도읍 의원이 맡고 있어 법안 처리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야당은 개정안의 법사위 처리를 건너뛰고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 표결(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본회의에 상정되면 개정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법안이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노동개혁’을 연일 강조하며 노동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만큼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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