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법, 대상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사물이 직접 말하게 하는 기법이 특히 글을 생동하게 해

(주)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3.11.09 09:48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전략) 여러 교량 양식 중 사장교와 현수교는 구조가 비슷하고 ‘경쟁하는’ 사이이다. 사장교와 현수교는 모두 주탑을 세우고,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이 상판을 지탱한다. 둘 다 상판을 높게 하고 교각 사이의 간격을 넓게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두 교량은 물살이 거칠거나 대형 선박이 통행해야 하는 등 환경이나 요건이 비슷한 곳에 세워진다. 

달리 말하면, 그런 곳에 다리를 짓겠다는 결정이 내려질 경우 사장교와 현수교는 그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현수교가 100년간 대세,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현수교가 사장교보다 더 많이 선택받았고 더 유명한 듯하다. 이를테면 케이블에 매달린 다리 하면 아마도 대다수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릴 듯하다. 이런 인상에는 근거가 있을까? (중략)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로 소개된 팝송이 있다. 영어 가사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거친 물 위의 다리처럼’이다. 가사처럼 교량
은 고마운 구조물이다. 사람과 물자가 안전하고 빠르게 오가게 한다. 정을 통하게 하고 경제활동을 촉진한다. 멋진 경관을 제공하면서 관광 자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거친 물 위에 다리를 놓는 엔지니어들’이다.
출처: 백우진, 사장교와 현수교의 경쟁과 공조, 대한토목학회, 2023년 7월호




이는 필자가 쓴 글의 일부다. 나는 이 글에 수사법 중 의인법을 활용했다. 현수교와 사장교가 생물처럼 경쟁하면서 공조하기도 한다는 설정 속에서 내용을 서술했다.

의인법을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은 “동식물이나 무생물 또는 추상적 개념과 같이 인격이 없는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활유법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는 생명이 없는 무생물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활유법의 하위 부류”라면서도 “대개 활유법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사전은 “의인법은 고대의 활물론 및 범신적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활용 장르와 관련해 “이러한 이유로 특히 신화·전설·민담·우화·동화 등에 많이 나타난다”고 전한다.
우리 고전 문학 중 의인법이 구사된 글 중 통일신라 시대 설총이 쓴 〈화왕계〉가 있다. 그중 두 문단을 살펴보자.



한 가인(佳人)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방랑하는 무희처럼 얌전하게 걸어나왔다. 가인은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설백(雪白)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리면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薔薇)라 하옵니다. 전하의 높으신 덕을 듣자옵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이 몸을 받아주실는지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화왕계 [花王戒] (네이버고전문학사전, 2004. 2. 25., 권영민)



이 사례는 “특히 신화·전설·민담·우화·동화 등에 많이 나타난다”는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의 서술에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다른 고전 문학 중 수필 〈조침문〉도 의인법을 구사했다. 본문은 ‘오호통재’에서 시작한다. 그 앞 밑줄 쳐진 부분은 서문에 해당한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중략)

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중략)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조침문 [弔針文] (외국인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2010. 1. 29., 배규범, 주옥파)



의인법은 낡은 수사법이 아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의인법은 우화를 비롯한 글에, 주로 과거에 활용된 수사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인법은 현대문학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자리라면 의인법을 적절하게 구사하자는 것이다. 서두에 인용한 필자의 글도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 독자께서 추가로 참고하도록 현대시의 한 작품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울릉도
동쪽 섬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도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중략) 멀리 조국(祖國)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懇切)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출처: 유치환, 울릉도




둘째 조언은 의인법을 구사할 때에는 가장 적극적인 ‘일인칭 의인법’도 적극 고려하라는 것이다. 의인법에는 삼인칭 의인법과 이인칭 의인법, 일인칭 의인법이 있다. 이는 필자가 정리한 개념이다. 필자가 사장교와 현수교에 구사한 의인법이 삼인칭 서술이라면, 〈조침문〉을 쓴 유씨 부인과 청마 유치환 시인은 이인칭 의인법을 썼다.

일인칭 의인법은 대상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다음은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중 ‘빨강’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전략) 나는 어디에나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 투르가 동생 이레치의 목을 야만적으로 내리쳤을 때, 꿈 같은 장관을 이룬 전설적인 군대가 초원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일사병에 걸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름다운 코에서 반짝이는 피가 흘러내릴 때, 나는 거기 있었다. (중략)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출처: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1, 민음사, 2016, 331~333쪽



서술 대상인 사물로 하여금 발언하도록 하는 일인칭 의인법은 읽는 재미도 준다.



내 이름은 ‘카스텔9000’이다. 난 사상 최초의 기록자라 불리는 연필이다. 고향은 깊은 잠을 자는 흑연 광산과 향기로운 삼나무 숲이다.
다이아몬드의 사촌인 탄소를 가슴에 항상 품고 다닌다. 난 사람들의 두뇌가 움직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는 세계 시민이다. 사람들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필기구라고도 생각한다.
출처: 손용석, 내이름은 카스텔9000, 포브스코리아, 2007년 3월호(48호)




당신은 리더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승용차와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지만, 발품도 누구보다 많이 판다. 그렇다면 당신의 구두나 운동화가 말하는 일인칭 의인법을 수사법으로 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OOO의 구두다. 2023년 10월 25일 현재 7년 하고도 딱 하루 동안 OOO과 함께했다. ‘구두를 그렇게 오래 신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묻는 분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사실이다. 그는 나를 오랫동안 보살피며 신고 다녔다”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인칭 의인법의 주인공 후보는 많다. 만년필을 택할 수도 있고, 컴퓨터로 정할 수도 있다. 당신의 특징과 습관과 활동을 잘 나타내는 사물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능하다.
의인법은 낡은 수사법이 아니다. 대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표현 방법이다. 특히 사물로 하여금 발언하게 하는 의인법이 글을 더욱 생동하게 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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