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알차고 풍부할수록 글이 돋보여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글쓰기 전 취재 충분히 하고, 내용 넘치면 주제 세분

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4.06.14 14:01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취재는 기자만 하는 활동이 아니다. 작가와 연구자도 취재한다. 이들의 취재는 대개 자료 조사라고 불린다.

확보한 자료가 좋을수록 글이 알차고 돋보이게 된다. 취재를 덜 한 상태에서 글을 쓰면, 다양한 기법으로 치장하더라도 내용이 성기게 된다.

상당히 놀라운 점은 전문 저술가와 연구자조차 간혹 취재에 공을 덜 들인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자신한 나머지 자료 확보 활동에 소홀한지도 모른다.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책 〈아웃라이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다른 저서 중 〈블링크〉가 있다. 이 책은 초입에서는 직관의 힘을 적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쿠로스'라는 고대 조각상이 위조품임을 직감으로 판단한 전문가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전문가는 이탈리아인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체리였다. 그는 폴 게티 미술관의 운영위원이었다. 체리는 1983년 12월, 미술관의 복원실로 안내되어 조각상을 보았다. 그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쿠로스의 손톱에 머물렀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손톱이 이상해 보였다. 오랜 기간 많은 진품과 위품을 보면서 갖추게 된 직감의 시각에 손톱이 걸린 것이었다.

저자는 ‘한눈에 알아차리는 직감’의 힘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이 책을 썼다. 이를 제목 ‘블링크’를 통해 드러냈다.



‘직감의 힘’ 사례 하나로는 부족



그러나 글래드웰은 여기서 취재를 멈췄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직감을 충실히 전하기 위한 노력을 덜 기울였다.

다른 사례로는 예컨대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제시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주방에 불이 난 집에 진입한 소방관의 경험을 들려줬다. 호스로 불을 끄기 시작한 상황에서 소방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전원 철수!”를 외쳤다. 소방관들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지휘관은 빠져나와야 한다는 자신의 판단을 복기해봤다. 그는 불길이 평소보다 조용했고 귀가 유난히 뜨거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화재 조사 결과 주방의 불보다 더 큰 불길이 소방관들이 서 있던 바닥 바로 밑 지하실에서도 번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육감 또는 직감은 어디에서 나오나. 어떻게 길러지나. 글래드웰은 이런 실질적인 물음도 제기하지 않은 채, 유용한 직관의 반대편에 있는 해로운 선입견으로 넘어간다.

필자가 문제를 제기한 만큼, 답도 공유한다. 책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직감을 ‘감각’이라는 용어로 쓴다. 이 책은 감각을 연마하는 방법으로 평소에 개별 사건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예상하고 결과를 맞혀보는 활동을 든다. 이런 훈련을 축적하면 감각이 예리해지고, 그런 감각을 갖춘 사람은 미지의 새로운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그게 어떤 범주, 즉 문제 유형에 속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해 신속하게 대응 또는 해결할 수 있다. 

앞의 두 사례에서 미술사학자와 소방 지휘관은 이런 사례와 범주 훈련을 남다르게 해온 결과 각각 대상과 사건의 일부를 접하고도 금세 정확한 결정을 내렸다.



전문가라서 조사에 소홀할 위험이 있어



글래드웰 외에 일본 학자 구로다 류노스케도 취재 부족을 책으로 드러냈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 분야인 언어에서. 구로다는 〈세계의 말들〉에서 100종 언어를 소개한다. 여기에는 산스크리트어와 리투아니아어가 포함됐다. 그는 앞 언어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리투아니아어의 독특함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리투아니아어는 살아 있는 화석과도 같은 언어다. 기원전 3500년 무렵 고대 인도유럽인들이 사용한 언어의 원형이 리투아니아어에 남아 있다. 한 언어학자는 “고대 인도유럽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알고 싶으면, 리투아니아에 가서 촌부들의 말을 들어보라”라고 말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리투아니아어는 고대 인도에서 쓰인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하다. 그래서 “리투아니아의 촌부가 인도 카슈미르의 촌부를 만나면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이에 비추어 구로다는 “인도유럽어족 중에서도 옛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리투아니아어, 언어의 실러캔스라는 말을 듣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정도로 그친다. 사례로는 물을 의미하는 리투아니아 단어 아츠타스(actas)와 라틴어 아쿠아(aqua)가 닮았다는 추측을 든다. 그러나 이 사례는 그가 추측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이를 털어놓아 독자를 허탈하게 한다. 아츠타스라고 적힌 병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 뒤 마신 그는 즉각 내뱉고 만다. 물이 아니라 식초였다. 리투아니아어로 물은 ‘반두오’라면서 “어설픈 비교언어학 지식 때문에 쓴맛, 아니 신맛을 봤다”고 글을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산스크리트어 꼭지에서 리투아니아어와의 관계를 언급했을까. 그러지도 않았다. 그는 산스크리트어의 중요성으로 불교 경전에 쓰였다는 사실과 유럽인도어족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두 가지를 들 뿐이다.



분량 모자랄 경우 여담도 괜찮아



취재를 두루 했는데도 재료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여담’을 넣어도 좋다. 학술적인 글이 아니라면 주제에서 살짝 벗어나 읽을거리를 제공해도 된다. 필자의 사례를 공유한다. 필자는 노르웨이에서 추진 중인 세계 최초 터널 운하를 소개한 글을 정리한 적 있다.

‘스타드 선박 터널’은 북해와 노르웨이해의 경계에 위치한 스타드반도에 시공될 예정이다. 이 반도 인근 바다는 파도가 거칠어 위험하다. 필자는 터널을 통한 안전한 운항으로 얻는 피오르 유람선의 안전과 어선의 연료비 절감 및 탄소 배출 감소,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과 착공 및 완공 일정, 공사 방법 등을 소개했다.

필자는 세계 관광객을 유혹하는 피오르 얘기로 글을 시작했다. 끝은 ‘스타드 선박 터널은 피오르의 나라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이 될 듯하다’로 맺었다. 이 문단 앞은 관광객이 관심을 둘 만한 노르웨이의 문화·예술로 채웠다.

세계인이 이목을 집중시킨 파나마 운하 공사는 자료를 찾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방대했다. 원고량 25매에 정리해 넣으려다 보면 드라마 같은 과정과 등장 인물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파나마 운하를 두 차례에 나눠서 쓰기로 했다.



상편과 하편을 독립적으로 쓰는 법



이런 경우 상편과 하편의 내용을 어떻게 배분할지 기획해야 한다. 하편이 상편의 내용을 연장해서 마무리할 경우 구성이 단조로워진다. 또 상편을 읽지 않은 독자는 하편만으로는 파나마 운하를 부분적으로만 알게 된다.

필자는 상편과 하편이 각각 독립성을 지니도록 내용을 배분했다. 상편에는 아메리카의 지리와 파나마 운하의 입지 선정,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국제 정치, 앞서 시도한 프랑스의 실패, 프랑스의 노력이 진척을 보지 못한 원인, 미국이 성공시킨 파나마 운하의 갑문 공사, 파나마 운하가 가능하게 한 운항 시간 단축과 경비 절감 등을 담았다.

하편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 숨은 영웅들’이라는 제목과 콘셉트로 작성했다. 파나마 운하는 공사 외적인 장애물로도 가로막혀 있었다. 그중에는 국제정치도 있었고 풍토병도 있었다. 필자는 프랑스 엔지니어 필리프 뷔노바리야의 활약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뷔노바리야는 자신의 사명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나는 위대한 프랑스의 과업을 부활시켰습니다. 프랑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추방했지만, 나는 그 아이를 우방에 입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군의관 윌리엄 고거스의 풍토병 대응이 없었다면 미국의 파나마 운하 공사도 중단됐을지 모른다. 앞서 프랑스의 파나마 운하 공사 현장에서 약 2만2000명이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었다. 황열병이 말라리아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거스는 이집트 모기가 황열병을 퍼뜨린다는 연구를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황열병을 퇴치했다.

이 대목에서 이 글을 집필하기 전 준비한 재료가 다 동났다. 이 원고는 아직 분량이 부족하다. 이럴 때는 더 궁리해야 한다. 다음 문단은 내가 추가로 떠올린 ‘걸리는 취재 방법’을 소개한다.

취재는 당연히 대부분 능동적인 조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주제를 정해놓으면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재료가 포착되기도 한다. 여기서도 필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종이 책 발행을 중단할 정도로 침체됐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온라인으로 내실을 갖췄고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쓰기로 했다. 

주제를 이렇게 잡았더니 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이 백과사전을 여동생 결혼 기념으로 선물했다는 일화가 보였다. 책 〈리처드 파인만〉에서 해당 대목을 찾았고,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결혼할 때 오빠가 〈브리태니커〉를 결혼 선물로 줬어요. 오빠가 보기에는 그게 없으면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니었죠.”

글을 잘 쓰고 싶은가? 재료를 요리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글감을 확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시라.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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