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부터 빼앗는 천년의 맛 ‘진도 홍주’

[우리 지역 명품 먹거리]최고급 진상품에서 칵테일 등으로 변신, 대중화와 명품화 성공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현승 기자 입력 : 2025.02.11 10:07
편집자주‘보성 녹차, 영광 굴비, 횡성 한우고기….’ 지역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이어져 내려온 식재료가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원산지의 이름을 상표권으로 인정해주는 ‘지리적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선의 지자체는 지리적 표시제를 지역의 특화된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지역 특산품은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 경제를 살린다. 우리 지역 경제를 살리는 농산물이나 특산물은 어떤 게 있는지 머니투데이 <더리더>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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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특산품인 홍주는 이름처럼 투명하고 붉은빛으로 마시기도 전에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홍주를 보고 이렇게 읊었다.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 풍경이로다.”

조선팔도를 두 발로 누비며 전국 명주를 모두 맛봤을 김정호 선생도 마음을 뺏긴 술. 진도 홍주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빛깔과 향긋한 맛으로 유명한 홍주의 기원은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3세기 대몽항쟁기를 거치며 유입된 증류주는 한반도 북부와 개성을 중심으로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증류주 기반의 홍주가 어떻게 멀리 떨어진 남쪽 섬 진도에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항몽 삼별초군의 입도, 양반 유배인의 전수, 함경·평안도 유민의 이주 등 여러 추측이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진도 홍주는 ‘지초주’로 불리며 최고급 진상품으로 임금에게까지 전해졌다. 머나먼 남도의 술이 임금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도가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진도는 한겨울에도 쉽게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갖췄다. 

진도는 이처럼 풍요로운 자연환경 덕분에 많은 정·학계 거물들의 유배지 중 한 곳이었다. 귀양살이로 내려온 선비들은 진도의 예술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고, 홍주는 그들의 시름을 달래며 입소문을 타고 한양과 궁궐까지 명성을 떨쳤다.

◇건강을 담은 붉은빛, 지초의 비밀
진도 홍주의 선홍색은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 붉은빛을 선사한 지초는 예로부터 인삼과 녹용과 함께 3대 선약(仙藥)으로 불렸다. 한방에서는 황달, 해독, 해열, 화상 치료 등에 약재로 사용됐으며, 오래 묵은 지초는 산삼에 버금가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최근 진도군은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과 협력해 지초 성분의 항당뇨 및 항비만 효과를 입증했다. 농촌진흥청 연구로 관절염 치료 효과도 확인되며, 진도 홍주의 건강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지초는 단순한 술 재료를 넘어 약재와 염료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과거 진도 지역에서 자생했으나, 무분별한 채취와 환경 변화로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지초는 생육 환경에 민감해 깨끗한 공기와 서늘한 기후를 선호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도군은 지초 재배를 활성화하고 있다.
▲전남 진도군의 진도 홍주 거리/사진제공=진도군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홍주, 오늘의 입맛을 사로잡다
조선시대 최고의 술로 인식됐던 진도 홍주는 20세기 들어 희석식 소주의 등장과 주세당국의 밀조주 근절법 등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1993년에 창립된 진도전통홍주보존회가 보존·개발·산업화에 나서며 부활한 진도 홍주는 199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전통의 명맥을 다시 잇게 되었다.

진도군은 홍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홍주의 빛깔이 7월 탄생석 루비를 닮은 점에 착안해 7월 7일을 ‘진도 홍주의 날’로 지정했으며, 홍주체험장과 홍주학교를 운영해 관광객들에게 전통주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진도 홍주는 시간 속에 갇힌 전통주가 아니다. 군 관계자는 “주류시장 흐름에 맞춰 소비자들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며 고품질의 진도 홍주를 생산하고 있다”며 “다양한 상품화를 통해 젊은 소비층 저변을 더욱 확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진도(Jindo)’ 칵테일이 탄생했다. 진도 홍주를 활용한 칵테일로 2012년 대한민국 대표 우리술 베이스 칵테일 공모전에서 당선됐다 2014년부터는 조주기능사 시험에 포함되면서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고 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대중화, 명품화에 성공한 진도 홍주는 2007년 1월 23일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캐나다, 일본, 가나 등에 수출됐다. 2009년에는 진도 홍주가 위스키의 본고장인 영국에까지 판매되며 세계적인 명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9월, 전남도가 주최한 ‘2024 남도 우리술 품평회’에서 진도 홍주가 우수상을 수상하며 품질의 뛰어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김희수 진도군수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진도 홍주의 대중화와 판로의 확대 및 다양화를 고민하겠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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