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詩를 캐내는 ‘낭만 농부’, 이기순 예산 가브리엘농장 대표

[농촌은 지금, jump up]“자연서 배운 겸손의 자세, 귀농 실패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입력 : 2018.01.31 10:42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이기순 예산 가브리엘농장 대표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다섯 번째 주인공은 한 겨울 시금치 밭에서 추위도 잊은 채 매일 시를 짓는 마음으로 일하는 시인 농부, ‘예산 가브리엘농장’ 이기순 대표다. 자신의 친정인 예산으로 남편과 함께 귀농하여, 멜론과 오이, 쪽파를 봄에서 가을까지의 작목으로 정하고 겨울에는 시설 하우스로 시금치 재배를 하고 있다.


반도체 회사에서 사내 커플로 만난 남편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한 지 5년이 되었다. 처음 귀농할 때 15년을 계획했다고 하니, 삼분의 일이 지난 셈이다. 처음으로 귀농한 곳은 충남 천안 병천, 남편 이병철 대표의 고향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충남 예산 탄중리, 이기순 대표가 나고 자란 곳으로 농장을 이전하였다.


귀농 초반에는 적극적인 투자로 전력을 다하는 농사였다면, 중반전인 지금은 숨과 쉼이 어우러지는 ‘슬로우 농법’을 지향하고자 친정의 품으로 왔다고 한다. 스스로를 낭만농부라 칭하며 시금치 밭에서 언제나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농업계의 신데렐라, 이기순 대표는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에서 활동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시를 짓는 마음으로 농사짓는 이 대표의 가브리엘 농장으로 가는 걸음이 마치 천사를 만나러 가는 듯했다. 농협 미래지원센터에서 주최한 2017 농부이야기 ‘꿈’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시를 읽고 나니, 어느새 기자의 걸음걸이도 더욱 빨라졌다.


쪽파밭 풀을 메다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짝을 지어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보니
어린 시절 동무들과 물장구치고 메뚜기 잡던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우리 동네는 그 유명한 예산 사과 동네
언덕에 온통 사과 꽃이 피면 나무 아래서
사과 꽃밥을 만들고 시집을 읽곤 했는데
사과나무집 엄니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어른이 되면 빠알간 사과나무를 지키겠다던
작은 소망은 세월의 뒤안길에 서 있습니다
-하략-
‘먼 길 돌아서 고향에 오니’, 이기순 지음


-이기순 대표 소개 부탁 합니다
▶“사과 꽃향기 가득한 내 고향 예산에서 농사를 짓는 요즘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도시로 나가 큰 회사에 취업하여 직장생활 잘 하는 것을 성공이라 여겼던 사람들에게 귀농이라는 단어는 낯설기만 하겠지요.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기에 돌이켜보면 꿈결 같았던 5년이 지난 셈이거든요. 남편과 함께 다니던 반도체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우연한 사고를 떠올려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과 꽃향기에 저절로 낭만 시인이 되곤 했던 여고시절, 문학소녀 시절을 되찾은 요즘이 참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귀농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면요
▶“등산을 무척 좋아해서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에 갔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산책처럼 등산을 시작했는데, 워낙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성격이라 암벽 등반을 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처럼, 등산에 한창 자신감이 붙어 있던 2011년에 암벽 등반 중에 추락하고 말았어요.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죽지 않고 산 것이 놀랍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부상의 심각함은 짐작하고도 남죠? 1년여 동안 이어진 병원생활을 마치고 복직을 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았고요, 직장에서 잘해오던 업무도 많이 뒤떨어졌어요.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요양원에나 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요. 몸이 허약해지니 정신도 함께 피폐해짐을 느끼던 차에 저 보다 직장 연수가 높은 남편에게 퇴직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오히려 기회다 싶어, 남편과 함께 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기에 고민 없이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천안 병천에서 예산으로 농장을 이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 귀농을 생각할 때 어디로 귀농할 건지에 대해 충분한 조사와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그저 남편의 고향이니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남편이 나고 자란 곳, 천안 병천으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모두 시골 출신이지만, 도시 생활을 오래 해왔던 터라 낯선 곳에서 농사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한 거 같아요. 진지한 고민과 충분한 조사를 통해 결정한 지역이 아니다보니 지역 특성과 땅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열정만으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고향으로 귀농하는 것의 장점도 많지만, 결국 농사를 짓는 것은 자연환경과 토질이 핵심이거든요. 농지를 한 번 정하면 도시에서 이사를 하듯 쉽게 바꿀 수 없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작물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환경의 농지를 잘 선택하시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의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도록,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시댁인 병천에서 친정인 예산으로 농장을 이전한 것은 시댁을 떠나 친정으로 온 것 그 이상입니다. 우리 가브리엘 농장의 2기를 예산에서 시작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농장에서의 변화와 혁신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하고 나니 굉장히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변혁이라 생각해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처음 고향 시골 마을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조화로워 보였어요. 성서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여기구나 생각할 정도로 꿈에 부푼 상태로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죠. 자연을 만끽하며 그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금세 부자가 될 줄 알았다니까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막연하게 낭만으로 시작한 귀농이었으니 성공할리 만무했겠죠. 그래도 농사의 좋은 점은 정년퇴직이나 은퇴가 없다는 점이에요. 살아 숨 쉬는 순간까지 체력이 남아 있는 한도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낭만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농사에 대한 열정과 낭만을 잃지 않고, 실패한 부분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병천에서 예산으로 농장을 이전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바꾸거나 다르게 해야 할 부분이 확실하게 파악되었다면 바로 실행해야하니까요. 누군가 병천 농장에서의 실패를 인정하는 거냐고 물으시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귀농 성공담만 부각되는 요즘, 귀농 실패를 인정하시니 놀랍습니다
▶“성공담을 듣는 것으로 배우는 것도 많겠지만 실패담을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귀농 성공담 위주로만 나오기 때문에 우리 부부처럼 시행착오를 하는 초보 농부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귀농 실패 사례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면 더 좋았으리란 아쉬움과 여전히 성공담 위주의 귀농사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요, 저 또한 부끄럽지만 제가 실패한 이야기를 통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실패한 이야기를 했는데도, 농협에서 주최한 ‘이야기가 있는 농식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걸 보면 누군가는 꼭 말해야할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귀농 실패를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요
▶“어제 실패했다고 오늘도 실패하고 내일까지 실패해야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제 실패했다면 오늘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 한 가지를 알게 된 것이죠. 처음엔 좀 서툴고 느리더라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처음 귀농지를 잘못 선택하여 실패한 경험이 오늘을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만약 좋은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면 토양과 농법을 연구해볼 기회도 갖지 못했을 거고, 처음부터 농산물 판매가 쉬웠다면 농사를 우습게 봐서 기고만장했을 게 분명해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며 농사를 짓다보니 자연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겸손해야하고 배움의 자세를 유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배움이야말로 귀농 실패를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브리엘농장의 시금치가 자라고 있다

-농사지은 농산물 일부를 농사 첫 해부터 지금까지 기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경상남도까지 전국 12군데의 복지센터와 요양원 등에 제가 농사지은 농산물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선한 마음만으로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리기엔 부끄러운 이유가 농사를 너무 못 지어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정성을 다해 재배해서 맛과 영양은 뛰어난데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받는 것에 속이 상했어요. 도시에서 살 때는 결코 알 수 없던 농부의 심정을 알게 되었지요. 애써 농사를 짓고도 판매하지 않고 밭에 갈아엎는 심정이 어떨지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죠. 그저 아깝다고만 생각했고, 농업인들이 너무나 과격하게만 보였으니까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바엔 우리 부부가 농사짓는 하우스 10개의 동 중 1개 동 정도 물량은 기부하기로 결정했어요.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만 보내지 않고, 때때로 최상품의 농산물도 기부했더니 관계자들의 구매가 이어지더라고요. 진정한 나눔은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함을 경험했기에 기쁨으로 기부를 계속 할 수 있어 감사해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도시에 살면서 직장에서 인정받는 일꾼이었을 때와 농촌에 살면서 농사짓는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낭만 가득한 시인이 되었다는 점이고요,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느끼기에 달라진 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담당 업무에서 만큼은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농부가 된 뒤로는 마냥 낮은 자세로 배우고 또 배우느라 겸손한 마음과 태도가 자연스레 배었습니다.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자라는 시금치를 볼 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오면서 시 한 편이 뚝딱 지어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금치 밭에서 떠올린 시 한 편을 소개해주세요


얼어붙은 대지,
그 속에 시금치 하우스
자꾸만 손이 곱아 눈물이 납니다
내 손은 자꾸만 구들장 생각이 납니다
얼어붙은 입도 발도 그렇다 합니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처럼 한 발 한 발 다가서니
어느새 온몸으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해님이 호호하고 입김을 불어주며
시금치 안녕, 농부님 안녕 인사를 합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귀농을 하고 나서 어려웠던 일과 실패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두려움이 먼저 앞선 나머지 귀농의 꿈을 포기하는 분들이 생길까 염려스럽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은 농업 분야에 꼭 필요한 말이자 진리입니다. 농업은 하루아침에 뚝딱 해낼 수 없는 분야이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양분이 필요한 미래 산업입니다. 멀리 내다보고 멀리 가야할 길임을 알고 귀농을 시작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멀지 않은 곳에 농부의 땀을 좋아하고, 농부의 슬픔을 아파하고, 무엇보다 농부의 웃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산 가브리엘 농장의 기초를 닦으면서 고마운 분들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평상 귀퉁이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평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나, 작업을 할 때나 또는 잠시 앉아 차를 마시며 쉴 때도 고마운 분들을 떠올리며 축복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 분들의 이름을 새겨 제작된 평상은 계속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귀농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혼자서 잘해내는 것이 중요했던 도시 생활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걷기를 청합니다. 먼 곳을 향해 걷는 그 길에 시를 지으며 노래하며 춤을 추며 즐겁게 농사짓는 낭만농부, 이기순이 함께 하겠습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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