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EW] 국립발레단 허난설헌 재조명 수월경화(水月鏡花)…한과 미를 한국적 정서로 섬세하고 우아하게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파드되와 절정의 군무…최고의 음악과 무대, 조명, 의상, 무용수의 5위 일체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입력 : 2021.05.23 09:13
편집자주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이란 표현도 쓴다. 지금처럼 여성과 약자에 대한 화두가 일상과 정치권의 선거에까지 나온적은 없던 것 같다. 미투 운동은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그 여파와 파장도 수면 밑에서는 굉장히 크다. 무거운 주제를 한국의 서정적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재조명한 당대 최고의 천재 여류시인은 제대로 생전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동생 허균에 의해서 후대에 작품이 알려진 시인의 삶의 비애를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이자 안무가 김효영이 그의 시 두 편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춤의 언어로 무대에 올린지 4년 만에 황병기 명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게 재탄생 시켰다. 이는 안무가를 믿고, 러닝타임 60분을 맡긴,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의 '결단과 안목'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 ※ 이번 리뷰는 각 장면의 순서보다는 떠오르는 장면 순으로 시작했다.
▲국립발레단 허난설헌 수월경화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려진 가운데 5월 21일 프레스콜에서의 조용한 아침 장면./사진=국립발레단

수월경화(水月鏡花)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 아름답지만, 가혹했던 그녀의 삶과 시가 국립발레단(단장 강수진)에 의해 무대 위 시로 옮겨진지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총 리허설이라 표현하는 드레스 리허설(프레스 콜)이 지난 21일 국립극장에서 있었다.

리뷰 전 짧은평을 먼저하면,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힘있는 군무. 섬세하며 세심함을 느낀 파드되는 절정의 군무를 이룬다. 특히 오프닝의 8자 병풍의 앞에서 붓 놀림에 난을 치는 춤사위에 이어 시선을 압도 시키는 최고의 캐논 군무였다.'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뜻. 볼 수는 있지만, 잡을 수 없음을 뜻하는 애처로움이 은유적으로 담겼다. 수월경화 여성의 재능을 인정받기 어려운 시기인 조선시대, 자신의 신념을 천재적 문체로 풀어낸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작 중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이자 안무가 강효형에 의해 섬세한 감성으로 무대에 활짝 폈다.

감우는 느낀 대로 노래한다는 뜻. 여기서는 붓이 가는대로 시를 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꿈속 광상산에서 노닐다는 뜻을 가진 몽유광상산을 위해 안무가 강효형은 잎, 새, 난초, 바다, 부용꽃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삶을 그렸다.

시인의 삶을 초기, 중기, 말기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향기럽더니!, 다 시들었네!,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붉게 떨어지니!로 나눌 수 있다. 무대 위에서는 1장 감우와 2장 몽유광상산으로 막의 전환이 없다. 런닝 타임 60분이란 발레에서는 짧은 시간을 고려한 연출로 생각된다.

관람객은 병풍 같은 무대를 처음 만나며, 우리 한복은 아니나 조명에 따라 달라지는 중첩 특징과 한국미를 살릴 수 있는 쉬폰 등의 소재로 만든 의상으로 한과 미를 표현한 오뛰꾸뜨르 의상을 보는 재미도 있다. 허난설헌의 억압된 현실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실루엣이 드러난 여성 무용수 의상은 솔로 부분에서 허난설헌 삶의 자유의지를 은유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거문고·가야금·장구 등의 자진모리, 휘모리, 침향무(불교음악을 범패를 기본으로 한국 춤의 거장 김매자 공연을 위해 1969년 만들어진) 장단 국악기 소리의 음악. 거문고는 묵직한 음색으로 극적인 변화의 장면이 되는 장면에서 주로 등장한다. 화려하진 않으나 절제됨 속에 여백미가 있는 수묵화, 수묵채색화 같은 조명디자인은 각 장면의 연출력을 더하고 있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남성무용수 의상이 치마라는 사실도 색 다름을 준다. 희망을 상징하는 비상하는 푸른 난새 부분은 남성 무용수가 입은 의상은 조명과 더해져 짙은 푸른 빛 치마로 우아하지만, 힘 있는 춤사위의 특징과 더해져 폭이 넓은 치마폭은 세상을 담을 것 같기까지 하다. 턴과 점프 그리고 착지로 이어지는 춤사위에 새의 부리까지 세심하게 표현했다. 이 장면은 대립과 갈등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기존 발레에서 볼 수 없는 명장면을 남긴다.

무용수들은 가야금, 거문고 소리에 맞춰서 새와 꽃, 난 등의 주제를 손짓과 발짓 그리고 몸짓으로 형상화 낸다. 이는 발레를 기본으로 잔잔하며 섬세하지만,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춤사위. 허난설헌의 역은 시인과 화자로 두 명의 여성 무용수가 맡았다.


파드되 군무 등 감상 포인트 그리고 단아하나 전달력 있는 의상


막이 오르고 황병기 명인의 춘설이 거문고 연주로 들려온다. 무대 위 청록색의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 무용수가 따뜻한 오렌지 색 핀 조명 속에 걸어가는 무용수의 뒷모습은 햇살에 걸어가는 시인으로 보인다. 이어 우아한 춤사위가 펼쳐지는데, 동시에 음영으로 획이 병풍에 그어진다. 이윽고 무대에 펼쳐진 병풍 뒤로 무용수는 사라지는데, 이는 무용수가 앞서 이야기한 두 편의 시의 화자가 되는 시간을 뜻한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감우 중 오프닝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캐논(군무)를 선보이고 있다./사진=국립발레단

이제 획이 그어진 병풍 8자(칸) 앞에 검은색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들이 병풍 1자 1자 춤을 추면서 좁디좁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난을 형상화 하는 장면은 고난도 테크닉을 엿볼 수 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용수들을 보며, 동선이 서로 얽히지 않을까 잠시 긴장을 느꼈으나 이내 무용수들의 춤은 기존 발레에서는 볼 수 없는 선을 강조한 유연한 춤으로 난을 형상화한 섬세함에 빠져 들었다.

이어 한자 한자 흰 종이위에 시를 써 내려가고, 난을 형상화한 섬세하게 표현했던 춤사위는 무용수들이 한꺼번에 펼치는 빠른 템포의 캐논(칼 군무)의 힘 있는 춤사위로 변한다. 오프닝 씬의 감상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군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이야기를 하면,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은 강릉 태생이다. 강릉 앞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형상화한 여성 무용수의 의상과 섬세하지만, 테크닉 있는 춤사위도 극에 몰입하게 한다. 그러한 가운데 이 장면에서 사용한 포그는 당장이라도 파도가 나에게 올 것 같은 느낌을 더하며, 무대가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착각도 느끼기에 충분했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감우 시인이 강릉 앞바다를 회상하는 장면./사진=국립발레단


이제 감상 포인트로 혼성 군무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남성 무용수가 펼치는 희망의 푸른 난새와 함께 청록 색 드레스를 입고 펼치는 여성 무용수의 채색 난새는 시인의 삶의 닥쳐올 슬픈 미래를 예고한다. 난이 가을에 시들어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은 파드되와 혼성 군무로 표현했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중 푸른 난새 장면./사진=국립발레단

이 장면에서는 남녀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들러 올리는 리프트가 감상 포인트. 이어 바람에 의해 떨어지는 낙엽으로 형상화 된다. 바람의 남성 무용수 의상은 연 주황색 치마, 낙엽의 여성 무용수는 연 주황색 드레스로 임팩트를 줬다.

하나 더 이야기 하면 부용꽃 장면에서 부용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나 둘씩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 부용꽃과 바람을 연상 시키는 파드되는 부용꽃은 여성 무용수가 자주 색 드레스를 입고 형상화 하고, 남성 무용수는 바람을 연상 시키는데, 연 주황색 치마로 포인트를 살렸다.

이 장면은 바람에 부용꽃잎이 하나, 둘씩 떨어지는 슬픈 장면으로 화자인 시인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녀 무용수들의 각각의 파드되는 드라마틱한 군무 그자체로 절정을 이뤘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몽유광상산> 중 꿈 속 장면./사진=국립발레단

꿈을 꾸는 씬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여성 무용수가 흰 드레스를 입고 표현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물을 직접 형상화 하지는 않고, 추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는 꿈을 꾸고 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는 몽유광상산으로 비로소 완전히 넘어 옴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남녀 무용수가 표현하는 파드되 부분은 현실을 반영한 듯 꿈속에서 조차 힘들어하는 시인을 엿볼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몽유광상산> 중 마지막 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장면./사진=국립발레단

바람에 마지막 남은 잎이 떨어지는 장면도 파드되로 표현된다. 4명의 남성 무용수는 바람이고, 여성 무용수는 마지막 잎이 된다. 의상은 남성 무용수는 연 주황색 치마와 여성 무용수는 청록색의 드레스로 남성 무용수의 여성 무용수에 대한 리프트에서 떨어짐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부용꽃 27송이가 떨어지는 명장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막 공연을 보는 관람객을 위해 리뷰에 담지 않았다.


황병기 명인의 음악이 근간을 이루며, 울림을 주는 국악기와 함께 


▲국립발레단 허난설헌 재조명 수월경화(水月鏡花)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2일부터 23일 이틀간 열림을 알리는 공연 포스터./사진=국립발레단

여기까지는 각 장면별로 의상과의 감상 포인트였다면, 이제 음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음악과 장면을 연결 지어 감상 포인트를 제공하려 한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우선 기존 사전 음악을 녹음해 틀었던 MR이 아니고, LIVE로 국악기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고 황병기 명인의 춘설, 달하 노피곰, 하마단, 침향무, 밤의 소리, 남도 환상곡은 안무가 강효형이 직접 선택해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때론 클라이막스가 있는 한국적 애와 미의 표현.

음악감독인 김준영의 곡인 말없이 고이!는 붓으로 시를 쓰는 장면에 거문고와 술대인 대나무 막대로 연주해 시를 쓰듯 붓의 놀림을 표현했다. 마찬 가지로 김준영 작곡의 수장은  시인의 꿈 속 세계장면에서 들을 수 있다. 25현 가야금 4대로 연주되는 한진 작곡의 월하정인은 극에서 가을의 정서를 음색으로 담았다.

박우재의 보잉은 황병기 명인의 거문고와 다른 활대로 연주되어 거문고의 저음의 지속음을 날카로운 소리와 합쳐져 극을 극대화 시킨다. 심영섭 작곡의 하늘을 날다! 는 극의 결에 해당하는 음악으로 대단원의 마무리를 하며, 당시 천재 여류시인의 마지막까지 머물러 있고 싶은 희망적인 시 세계를 표현했다.


시놉시스(시) 허난설헌 


▲국립발레단원들의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공연 전체 캐스팅./자료=국립발레단

1장 <감우(感遇 / 느낀 대로 노래한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 소매를 적시네.

2장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 꿈 속 광상산에서 노닐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한편, 국립발레단(단장 강수진)의 허난설헌 수월경화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23일 오후 3시 마지막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이틀간의 공연을 마무리 한다. 이미 마지막 공연까지 매진이다.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는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지난 2017년 국립발레단의 초연 후 6월, 콜롬비아 보고타 마요르 극장에 이어 9월, 캐나다 토론토와 수도 오타와에 초청 공연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는 관객들의 평가를 받은 바 있다.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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