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쓰는 사람, 이은정… 생활인이자 문학인 삶의 감성 기록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입력 : 2021.08.19 07:44
▲쓰는 사람, 이은정./사진=출판사 포르체


기자로 살면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글을 쓰고 싶었다. 쓰는 사람 이은정 작가(출판사 포르체)의 신간은 그런 책이다. 글쓰기의 쾌락! 쯤, 빠지면 나올 수 없는 욕망 같은 삶의 글쓰기와 멈출 수 없는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 낭만적이지 않은 상황 안 작가이자 생활인 이은정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 역설적으로 낭만적인 문체가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술술 읽히지만, 생활에서의 철학이 담긴 산문집. 쓰는 사람 이은정은 그의 글에서 나온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마음 수리공이다.

읽고 쓰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작가 이은정의 처연한 삶 속에서 조차 느낄 수 있는 희망적인 책.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한 바닷가의 마을과의 만남으로 시작해 끝까지 작가로 살겠다는 선언으로 마무리 한다. 이 선언은 작가와 연이 맺어진 낯선 사람들이 보낸 관심의 보답이자 사의로 보이지만 이내 독자들을 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전업 작가’를 떠올리면 다소 낭만적인 것을 먼저 떠오르는데 처절할 정도의 작가의 생활상 그 자체를 담았다. 한겨울에 기름보일러를 땔 기름이 없어서 장갑을 끼고 글을 쓰고 쌀 산 돈조차 없어서 블로그에 글을 연재해 생을 이어야 하는 삶 등.

8월 18일 국회에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 의결이 예술인들의 화두가 되었고, 이 논의는 처음 생활고로 인해 원고가 아닌 삶을 마감한 고(故) 최고은 작가로 인해서 논의가 시작됐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최고은 작가가 생각났고,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위원장과 공론장 편집장 대담 진행하면서 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아르코 대극장 앞의 글귀가 생각났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그렇다. 이은정 작가의 작품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작가성이 엿보인다. 20년 만에 등단한 작가는 삶의 예술적 기록인 산문집으로 첫 탈고를 마친 것일 수도 있다. 이 산문집 전에는 2018년 단편소설<개들이 짓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책을 펴는데, 2020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를 받아서 책을 마무리 한 것 같다. 코로나19으로 지쳐있는 일상에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찾은 건 서평자의 즐거움이자 행운이다. 내 생의 마지막에 기어이 이 문장은 남기고 싶다며 “쓰는 사람이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하는 저자의 서평을 쓰는 나 또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목차]


프롤로그 당신이 나를 읽어준다면

1장. 당신과 온기를 나눈다는 것
기적은 가까이에 있다 / 타인의 인생에는 관대하지 못했다 / 너무 슬픈 어른이 되지 않기를 / 정을 굽는 할아버지 / 마음을 얻어 돌아오던 길 / 굳게 닫힌 문 / 엄마가 품고 온 봉투 / 마음 수리공 / 사랑밖에 남지 않기를 / 닫힌 문에 노크하는 용기 / 내 머리를 쓰다듬던 날 / 손 흔드는 사이 / 누가 타이어를 넣어두었을까 / 설날에 만난 위대한 손 / 그 겨울, 붕어빵 같았던 우리 / 사람이 흘러가야 하는 방향 / 감 따는 날다람쥐 / 언젠가는 우리 모두 미어캣이 되겠지 / 튀김 아저씨의 위트와 재간 /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 나만을 위한 비싼 김밥

2장. 나의 오늘에 충실할 것
그래서 오늘은 아름답게 살았느냐 / 마음을 쓰는 방법 / 완벽한 날은 없다 / 날아가지 않는 이유 / 내가 먼저 불러보면 될 것을 / 겨우 나 같은 인생이라니 / 늦지 않았습니다 / 내 인생에 대한 예의 / 매달리기를 잘하는 아이 / 수난이 시작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떤 힘도 나로부터 나온다 / 잘라내기라도 해야지 /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 / 가볍게 살다 가진 말아야지 / 시간을 소모하고 깨달은 것 / 질풍노도의 계절 / 겪은 만큼 보인다

3장. 나에게 말을 건 생각들
목마른 사람이 떠다 먹으면 됩니다 / 언젠가는 나로 채워
질 틈 / 나는 봄에 가장 못생겨진다 / 나의 변기는 흔들림이 없다 / 마음도 약육강식 / 파도가 묻는 말 / 어쩔 수 없는 일이란 / 아빠의 좋은 점 / 장어의 힘이 필요하다 / 본능적으로 뻗은 손 / 외출은 두렵고 사랑은 우습고 / 경찰서에서 진술하던 날 / 그 집엔 사람이 살고 있다 / 건강을 위한 수고로움 / 까다롭고 힘든 일 / 반려견과의 약속 / 쓰레기 버리러 가는 길 / 상냥하게 거절하는 사람 / 사랑에 빠지는 멍청이들 / 살모사와 꽃뱀 / 그해 여름엔 아날로그 감성이 /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울 때 / 사람 사이에 오가는 존중 같은 것 / 서서 밥 먹는 사람

4장. 슬픔을 딛고 다시 삶으로
어느 세대의 수다 / 그리운 것들은 참, 멀리도 간다 / 포기와 상실이 준 깨달음 /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 버려진 것들의 이야기 / 이끼가 된 여자 / 결핍이 생긴 걸 축하합니다 / 비로소 사람이 되어간다 / 얼마든지 젖어도 좋다 / 괴로워하던 여덟 살의 몸짓 / 어린이에게 배운 인생 철학 / 시절은 지나가고 세상은 변하지만 / 빨간색 이불을 사야겠다 / 놓지 못하는 게 병이라면 / 우리의 절망은 우리만 알아요 / 산타클로스가 필요한 나이 / 끝까지 작가로 살겠다


[책 속으로]


내 말을 들은 주인아주머니는 대단히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집을 보러 많이 오는데 보통은 말없이 가버린다고. 계약하지도 않을 거면서 다시 돌아와 인사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가진 게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세도 좋고 월세도 좋으니 여기 와 살라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내 주인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바르게 살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그 말 때문에, 그 따뜻한 손 때문에,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여기 와서 글 열심히 쓰겠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더욱 반색하며 말했다.“작가였구나! 좋은 작가가 되겠어.”나는 그 집에서 쓴 소설로 문학상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p.16-17, 기적은 가까이에 있다

“나는 전기 수리공이고, 작가님은 마음 수리공이네요.” 아! 마음 수리공이라니!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오랫동안 품고 살아갈 것 같았다. 그래, 나도 병든 마음을 글로 치유했었다. 쓰고 읽는 일만이 나를 구원해주었던 과거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마음 수리공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p.43, 마음 수리공

누가 먼저 마음을 쓰면 어떤가. 내 마음도 완전히 막혔던 때가 있었지만,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려 주었고 나는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서 문틈으로 마음 밖을 내다보곤 했었다. 조금씩 열다 보니 어느새 활짝 열고 먼저 안부를 묻기도 했다. 닫힌 문에 노크할 수 있는 용기가 마음을 얻고 사람을 얻는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긴 날이었다.
p.49, 닫힌 문에 노크하는 용기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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