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촌에 사람 모이니 ‘황금마을’ 되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주민 주도 ‘마을호텔’ 규제 풀어줘…청년들 몰리니 ‘행복황촌’

머니투데이 더리더 경주(경북)=신재은 기자 입력 : 2026.11.02 09:12
편집자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경북 경주시 황촌마을 나들이길 입구에 있는 기념석/사진=신재은 기자

황리단길·동궁과월지·첨성대 등 경북 경주의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 25분. 폐 경주역 인근 황오동 일원에 적산가옥과 한옥이 어우러진 황촌마을이 자리했다. 철길로 단절되고, 각종 규제로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됐던 ‘도심 속 섬’ 황촌마을이 전통과 옛 정취를 보존한 ‘마을호텔’로 재탄생하고 있다.

◇경주 근대문화와 마을호텔의 만남, 황촌마을
▲정비된 황촌마을 골목길/사진=신재은 기자

비가 내리던 지난 10월 20일 황촌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행복황촌’이란 글귀가 보였다. 마을 원주민과 관광객 모두 황촌마을에서 일상을 여행처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행복황촌 도시재생사업은 주민들이 주축이 된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현재 70명의 조합원이 △마을호텔 운영 △도시재생 사후관리 △거점시설 위탁 운영 △골목상권 활성화 등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자 몇 곳의 주택에 ‘행복황촌 마을호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마을호텔은 오랫동안 방치됐던 빈집과 노후주택을 개인이 매입 또는 임차해 숙박시설로 조성한 곳이다. 각 숙소들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철도 승무원이 기거하던 관사촌, 슈퍼와 연결된 구옥, 역무원 숙소 등 각각의 역사와 특별함을 담고 있었다.

▲옛 경주역장 사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원형이 최대한 보존돼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황촌마을 곳곳엔 눈길을 사로잡는 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다소 적막했던 골목과는 다르게 카페 안은 손님들로 붐볐다. 정승민 행복황촌협동조합 이사장은 “마을호텔로 황촌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감성카페’가 하나둘씩 생겼다”고 말했다. 주말엔 대기 손님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다. 최대한 구옥의 형태와 느낌을 보존하며 요즘의 감성을 더한 모습이었다.

고향인 황촌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고향의 근현대사 유산을 지키면서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옛 경주역장 사택을 매입했다”며 “주변에선 빌라 등 숙박시설을 조성하라고 조언했지만,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 채 카페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사업은 황촌마을 곳곳의 풍경을 바꿨다. 회색빛 담벼락은 예쁜 벽화와 시인들의 시로 꾸며졌다. 바닥도 평탄화해 걷기 쉽게 정비했다. 박정호 경주시 철도도심재생과 지역재생지원센터장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바닥을 정비하고 담벼락도 예쁘게 꾸몄다”며 “주민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황촌마을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행복황촌협동조합은 수익 일부를 마을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협동조합은 마을 거점시설인 ‘황촌마을활력소’를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이 공간을 주민문화수업을 위해 개방한 것. 취재가 진행된 20일에도 강의실과 강당에서는 오카리나 수업, 라인댄스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승민 이사장은 “마을호텔 조합 기여금과 위탁시설 운영 수익 등 조합의 수익으로 주민들을 위한 문화강좌 및 동아리 운영,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촌마을활력소 1층에는 주민 및 방문객이 이용 가능한 빨래방을 열었다. 주민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빨래방을 사용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취약계층의 이불을 수거해 무료 세탁하는 사업도 운영 중이다.

평생을 황촌마을에서 살았다는 한 어르신은(72세) “예전엔 사람도 적고 적막하기만 한 마을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길도 정비되니 좋다”며 “마을활력소에서 하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람 모이는 행복황촌…규제혁신 주효

▲행복황촌 마을호텔 입구/사진=신재은 기자

도시재생이 진행되며 황촌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2021년 1295명이었던 유동인구는 2025년 5431명으로 319% 증가했다. 노후되고 방치됐던 빈집 중 총 59호가 수리 및 정비돼 마을호텔 34개소, 카페 16개소, 주거지 9개소로 탈바꿈했다. 지역상생 프로그램 참여자 역시 2571명에서 1만1247명으로 증가했다.

황촌마을 도시재생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 주도성에 있다. 행복황촌 내 마을호텔은 모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도시 내 주택을 활용한 숙박업은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제한된다. 예외적으로 지역 주민이 마을기업(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면 내국인에게도 숙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황촌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이곳의 주민이 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박정호 센터장은 “증여받은 주택을 활용하거나 소자본으로 노후 주택을 매입·개보수하는 청년들이 늘면서 슬럼화됐던 마을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민 이사장도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중 하나다. 오랜 서울살이에 지쳤던 그는 경주로 돌아와 노후주택을 직접 고친 뒤 마을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역무원 관사 등 황촌마을만의 근대문화 자원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며 “이를 활용해 마을호텔을 만들면 경주의 다른 관광지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존 규정상 20~30년 된 노후주택은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할 수 없었다. 당시 황촌마을의 노후건축물 비율은 95.2%로, 제도 개선 없이는 사업 추진이 불가능했다. 이에 마을호텔을 준비하던 주민들이 건의에 나섰고, 시는 법률 자문 등을 통해 규제를 완화해냈다. 그 결과, 일정 수준의 안전등급을 획득한 경우 도시민박업 등록이 가능하도록 관련 지침이 개정됐다.

◇“황촌의 콘텐츠 연계하는 ‘체류형 관광 모델’ 구축할 것”
▲황촌마을 거점공간인 ‘황촌마을활력소’/사진=신재은 기자

행복황촌은 커뮤니티 기반의 체류형 관광 모델로 전환을 꾀한다. 기존 숙박, 식음료, 체험, 골목길 투어 등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사업을 통합·연계해 마을호텔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관광객은 특정 식당에서 마을호텔 조식을 먹고, 마을해설 투어에 참여하며, 공방 체험이나 굿즈를 구입할 수 있다. 정 이사장은 “단순히 자고 가는 숙박에 그치지 않고, 골목상권 이용이 연계되는 패키지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마을호텔의 거점시설인 황촌정지간에서는 쿠키 맛집 사장님의 1일 수업도 진행될 예정이다.

거점시설인 황촌마을활력소 1층은 ‘마을호텔의 로비’로 조성할 계획이다. 모든 관광객이 이곳에서 체크인을 진행하고, 짐을 맡기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다. 2027년 하반기 구축이 목표다. 정 이사장은 “통합라운지에서 청년, 시니어 등 주민이 체크인과 짐 보관, 마을 안내를 진행하면 원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협동조합은 분절화된 마을호텔의 숙박 및 식음료, 체험 등을 한 곳에서 예약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 구축도 계획 중이다.

주민 주도의 사업 추진과 적극적인 규제 완화는 배달도 오지 않았던 황촌마을을 찾아오고 싶은 ‘행복황촌’으로 만들었다. 통합 체류형 모델 구축을 앞둔 행복황촌에게는 자생적 비즈니스 모델 확립, 지역 원주민과의 융합 등의 과제가 남았다. 정 이사장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싶은 마을호텔 콘텐츠를 구축하는 한편 그 이익을 마을 주민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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