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아래 감춰진 사실과 분석

[AI 시대 , 리더의 생각]이광수가 윤문했고, ‘나의 소원’은 직접 썼다는 방증 있어

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6.11.06 09:25
편집자주생성형 인공지능(AI)이 여러 업무에 자리 잡고 있다. AI 사용으로 업무 효율이 향상되는 가운데, AI가 생산한 자료를 받은 사람의 검수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의사결정의 정점에서 일하는 리더는 특히 최종 검수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활용할 만한 생각법을 공유한다. AI 답변 대용으로 주로 전문가들이 쓴 글을 검수 대상으로 다룬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1947년 처음 출간. 약 80년간 160여종의 판본에 걸쳐 누적 1000만 부 이상 판매. 〈백범일지〉의 기록이다. 이토록 많이 읽혔는데도, 이 책에 대해 덜 알려졌거나 오해되는 사실들이 있다. 〈백범일지〉에 감춰진 주요 사실들을 살펴본다.

첫째, 책의 원래 제목은 〈백범일기(白凡日記)〉였으나 이것이 〈백범일지(白凡逸志)〉로 왜곡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1년 배달말교육학회에서 낸 ‘배달말교육’ 22호에 실린 글에서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가 이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뛰어난 뜻’을 ‘일지(逸志)’라고 하며, ‘뛰어난 물건’을 ‘일품(逸品)’ 이라고 한다는 逸자 활용례에 비추어 김구가 자신의 뜻을 ‘뛰어난 뜻’이라고 표현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김구의 호 ‘백범’은 ‘백정’과 ‘범부’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천하고 평범한 보통사람’을 뜻한다. 그런 김구가 자신의 글을 ‘뛰어난 뜻’을 의미하는 ‘일지’라고 말할 리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비판은 책 〈김구 청문회 2: 김구는 통일의 화신인가?〉(2014)로 이어졌다. 저술가 김상구는 이 책에서 ‘일지’를 “백범 자신의 훌륭하고 높은 지조를 쓴 기록물이란 뜻”으로 해석한다. 이어 이는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금칠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수준 낮은 시비”라며 일축했다. 우선 일기인지 아닌지는 본문을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문은 하루 단위로 기록되지 않았다. 도 교수는 “상권은 1928~29년, 하권은 1941~42년, 두 시기에 집중적으로 집필한 ‘회고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2019년 ‘백범회보’ 통권 61호에 기고한 ‘〈백범일지〉: 오해와 적의, 원본과 출간본’에서 “려증동-김상구가 〈백범일지〉는 원래 ‘일기’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그들이 원본을 한 번도 구경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도 교수는 이어 “‘일지(逸志)’를 ‘뛰어난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志)’는 ‘뜻’이라는 의미 이외에, 흔히 ‘기록’ 또는 ‘이야기’란 의미의 지(誌)’와 같이 통용된다”며 “저 유명한 〈삼국지(三國志)〉를 ‘삼국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는 반례를 들었다.

둘째 오해의 사례를 다음 글이 보여준다. “필자 생각에 김구 선생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뛰어난 문장력이다. 그의 수필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이 글의 필자는 마크 피터슨 미국 브리검영대(BYU) 한국학 명예교수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1973년), 박사(1987년) 학위를 받았으며, 조선시대 사회사와 한국의 가족제도를 연구했다. 그가 감동했다며 인용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부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만큼이면 충분하고, 우리의 군사력은 타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무한히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오직 고도로 발달한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유려한 문장은 이광수 손 거친 결과
피터슨 교수가 감탄한 문장은 김구가 쓴 것이 아니라 이광수가 윤문한 결과다. 국한문혼용체인 김구의 원고가 다듬어졌으며 윤문은 이광수가 맡았다는 사실을 김구의 아들 김신이 밝혔다. 김신은 우선 1994년 〈백범일지〉 육필원고본을 영인본으로 출간하면서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백범일지〉가 처음 활자로 간행된 것은 광복 후 서울에서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 의해서다. 이때는 원본을 현대 한글철자법에 준하여 윤문하였고, 부록으로 선친의 정치철학을 피력하신 ‘나의 소원’을 첨가하였다.”

윤문을 누가 했나? 김신은 앞서 ‘신동아’ 1986년 8월호 인터뷰에서 “춘원 이광수가 원본을 국문으로 옮기고, 철자법도 고쳤다고 들었습니다”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춘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님은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 글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했대요.”

한편 첫째 오해와 둘째 사실은 서로 엮여 있다. 첫째 오해를 주장한 사람들은 이광수가 윤문하는 과정에서 제목도 〈백범일기〉에서 〈백범일지〉로 바꿨다고 곡해했다. 마지막으로 다룰 대상은 아직 사실로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논의할 가치가 있다. 바로 〈백범일지〉의 부록 ‘나의 소원’도 이광수가 썼느냐는 것이다. 이광수가 〈백범일지〉를 윤문하면서 이 글을 직접 써서 추가했다는 분석이 여러 연구자에 의해 제기됐다.

김원모 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2015년 낸 책 〈자유꽃이 피리라〉에서 “육필원고본에는 ‘저자의 말’과 ‘나의 소원’은 찾아볼 수 없다”며 “그러므로 이광수는 육필원고본을 저본으로 〈백범일지〉를 저작했고 ‘저자의 말’과 ‘나의 소원’을 창작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나의 소원’은 이광수 수필집 〈돌벼게〉의 ‘사랑의 길’과 “구문, 문체, 논지가 완전 일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광수의 다른 글 ‘젊은 조선인의 소원’과 “그 맥이 상통된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김구의 활자매체 기고문에서는 ‘나의 소원’이나 ‘저자의 말’과 겹치는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김 명예교수는 내용과 비유가 유사한 사례를 제시하지는 않았다.나는 〈돌벼게〉 ‘사랑의 길’과 〈백범일지〉 ‘저자의 말’에서 유사한 문장을 찾아냈다. 각각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현실을 보건댄 앵글로색슨식 민주주의자나 슬라브식 민주주의자나 다 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혹은 워싱턴을, 혹은 모스크바를 고대로 서울에 떠오려고 하는 것 같다.” (‘사랑의 길’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상으로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맑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서)

◇‘나의 소원’, 내용·문체가 본문과 달라
두 글을 이광수가 집필했다는 또 다른 근거로 김 명예교수는 ‘저자의 말’에 집필 날짜가 ‘단군기원 4280(1947)년 11월 15일 개천절 날’로 명기된 사실을 든다. 이는 실제 탈고일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설정한 날짜이며, 그런 설정은 격동하는 해방 정국의 한 가운데서 활동하던 김구가 아니라 윤문을 맡은 문인 이광수가 했으리라고 추정한다. (이 해석은 김원모 명예교수의 글을 바탕으로 내가 한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김 명예교수의 분석을 이어받아 ‘나의 소원’은 “이광수가 김구의 자서전 저자명 아래, 그리고 그의 승인 아래 자신의 생각을 삽입해놓은 흔적이 역력한 텍스트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 교수는 2020년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와 이광수 ‘윤문’의 의미’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하고 그 근거로 문체의 차이를 더 살펴본다.

방 교수는 김구가 직접 쓴 원고에는 서양 지식계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반면 ‘나의 소원’에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엘바하의 유물론, 이 두 가지와 아담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을 가미한 맑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받아”처럼 서구 사상을 형성해온 주요 인물들이 거론된다.

김구 원문을 놓고 이광수가 윤문한 결과와 원고 없이 이광수가 직접 쓴 글에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비유하면 전자는 밑그림이 다 그려진 위에 채색한 그림이고, 후자는 전적으로 이광수가 맘껏 붓을 놀린 작품이다. 서구 사상사 인물들의 등장이 그 방증이다. (방 교수의 분석이 타당하다면 앞서 피터슨 교수가 인용한 글은 이광수가 쓴 것이다.)

혹시 방 교수가 뉴 라이트 진영에 참여하고 있고, 그래서 이광수를 부각하고 백범을 깎아내리려고 한 게 아닐까? 그가 뉴 라이트라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반대로 뉴 라이트 계열의 시도로 분류될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에 이어 문학도 세계인의 찬탄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소원’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화의 힘’을 희망한 백범이 높게 기려지고 있다. 문화를 역설한 원작자는 이광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면 어떨까. 백범을 낮추려는 제안은 결코 아니다. 이광수의 ‘나의 소원’을 받아들인 최종 결정자는 김구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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