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 일자리 만든 “내 사랑 춘천”의 힘

[청년, 지역을 택하다]가족과 친구, 여유가 있는 곳에 ‘판’을 까니 삶의 터전이 되다

머니투데이 더리더 춘천(강원)=최현승 기자 입력 : 2026.11.05 10:25
편집자주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청년 정책이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청년, 지역을 택하다’ 코너를 통해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을 함께 조명한다.
▲ 협동조합 판 구성원들의 모습/사진제공=협동조합 판
“내가 사랑하는 춘천, 나의 흔적이 넘쳐나는 춘천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오석조 협동조합 판 대표(39)가 고향에 남은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로부터 대학도 취업도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에게는 춘천을 떠나야 할 이유보다 남고 싶은 이유가 더 많았다. 다만 원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일자리는 부족했다. 그는 결국 동료들과 함께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난 10월 19일 강원 춘천시 운교동에 위치한 협동조합 판에서 만난 청년들은 지역에 남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경험’을 이야기했다. 직접 축제를 만들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나고, 어느새 가정도 꾸렸다. 처음부터 정착을 목표로 세운 것은 아니었다. 경험이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면서 춘천은 자연스럽게 삶의 터전이 됐다.

◇고향에서 일하고 싶던 청년들이 만든 문화기획사 ‘판’
▲워크숍을 떠난 협동조합 판 구성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사진제공=협동조합 판
판은 2016년 설립된 춘천 기반 문화기획사다. 지역의 자원과 이야기를 축제·공연·행사로 풀어내고, 문화기획자를 길러내는 일을 한다.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와 춘천술페스타, 공지천 재즈 페스타 등이 판이 기획·운영에 참여한 행사다.

오 대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축제라는 형태로 풀어내는 팀”이라며 “축제를 만들면서 우리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 대표가 문화예술기획을 직업으로 택한 데는 대학 시절 들었던 수업이 계기가 됐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며 “문화와 행사, 축제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예술 분야 구인 사이트를 통해 춘천의 극단 도모에 들어가 2년 10개월가량 일했다. 퇴사한 뒤에도 춘천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선택지는 넓지 않았다. 오 대표는 “일할 데가 없으면 내가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며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창업까지 갔다”고 말했다.

함께한 이들은 대학 시절 학생회와 동아리에서 만난 동료들이었다. 지역에 남아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축제로 모였다. 조직의 형태로 협동조합을 택한 데 대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우리 스스로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모였을 때, 의사결정이 자유로운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활동은 청년들이 직접 축제를 만드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2016년 육림고개에서 열린 ‘무한청춘페스티벌 주지육림’에는 지역 청년 20여명이 축제학교와 기획단을 거쳐 참여했다. 이후에도 문화기획자 양성 과정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만난 청년을 판의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오 대표는 “좋은 문화기획자가 주민들에게 좋은 문화 경험을 주고, 주민들이 다시 그런 경험을 원하면 기획자를 찾게 된다”며 “문화기획자의 일을 판에서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양한 기획자가 있어야 문화적 효능감이 높아지고 전체 시장도 커진다”고 말했다.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도”…자연스레 뿌리내린 춘천
▲지난 2023년 12월에 열린 춘천 문화시민협의체 ‘봄바람’ 네트워킹 파티에 협동조합 판이 참여했다./사진제공=협동조합 판
박정우 책임매니저(35)는 경기 구리시에서 살다가 대학 진학을 계기로 춘천에 왔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하면 본가로 돌아가 박물관 등 역사와 관련된 일을 해볼 생각이었다. 진로를 바꾼 계기는 대학 선배인 오 대표를 통해 경험한 문화예술 행사 아르바이트였다. 직접 준비한 무대에 사람들이 올라 노래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힘들었던 준비 과정이 보람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박 책임매니저는 “내가 만든 무대에서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며 “나도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오 대표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을 때, 재미있게 해봤던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인으로 춘천에 머문 지도 10년이 됐다. 그사이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일을 이어가며 아는 사람이 늘었고, 관계가 깊어졌다. 어느새 춘천에 뿌리내리게 됐지만, 그 결심은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있지만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커지면서 춘천에서 계속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말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을 꾸린 뒤에는 주거와 아이를 키울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비슷한 집이라도 구리와 춘천의 가격 차이가 크다”며 “부모님도 그 금액으로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느냐고 말씀하실 정도여서 주거 여건이 큰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차가 없는 사람에게는 제약이 있다”며 “아이와 함께 즐길 거리를 찾다 보면 아직은 주말에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박 책임매니저는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낯선 지역에 적응하려면 의지할 사람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아는 사람들과 일을 시작하다 보니 힘들 때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며 “타지에서 왔다가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함께 의지할 사람을 만들지 못한 경우도 있어,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영상에서 문화기획으로, 정착을 도운 대학시절 경험
▲지난 2019년 협동조합 판이 운영한 문화인력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성장판’ 진행 모습/사진제공=협동조합 판
춘천에서 나고 자란 김지섭 매니저(31)는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했다. 졸업 후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약 2년 반 동안 집에서 영상 일을 했다. 관련 일자리가 더 많은 서울로 가는 것도 생각했다. 그는 “춘천에서 영상 일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서울에 가야 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상 일을 그만두고 진로를 바꾼 데 대해서는 “일을 하다가 현실에 부딪혀 다른 일을 찾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지인이 판의 채용공고를 알려줬고, 대학 시절 KT&G 상상유니브에서 기획 업무를 했던 인턴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만든 기획은 인턴십이 끝난 뒤 실제 프로그램으로 실행됐다. 김 매니저는 “잘했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고, 제가 만든 기획이 실제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뿌듯했다”며 “다음에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 채용공고를 봤을 때, 전에 해본 경험이 있으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문화기획 일을 시작한 뒤에는 청년의 지역 정착 조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행사 때마다 만나는 단기 스태프들이 계기였다. 김 매니저는 “자주 오는 스태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일이 재미있다며 이 분야로 취업하고 싶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며 “우리 직원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어, 학생 때의 다양한 경험이 미래 직업을 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묻자 그는 “세부적으로 나누면 지역에 존재하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는데,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면 선택조차 할 수 없다”며 “어떤 경로로든 청년들이 지역의 일자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판’
▲오석조 협동조합 판 대표/사진=최현승 기자
오 대표가 그리는 협동조합 판의 미래는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기준과 이어진다. 그는 “채용할 때 실력보다 먼저 보는 것은 지역을 좋아하는지, 춘천에 남아 일할 생각이 있는지”라며 “지역에 대한 애정이 기획자의 기획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을 선택하는 청년들에게는 지역 내 커뮤니티를 체험해보는 것을 추천했다. 오 대표는 “결이 맞는 사람들과 다른 동네도 가보고 주말을 함께 보내다 보면 커뮤니티가 넓어지고 깊어진다”며 “지역에 대한 경험을 연결해주는 가교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도시마다 얻을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오 대표는 “수도권에는 일자리의 종류와 수가 많지만, 새로운 회사가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며 “지역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금방 눈에 띄니, 좋은 아이템과 생각이 있으면 실험해볼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소도시의 여유를 원하면서 수도권과 같은 문화·생활 여건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택하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서울과 비교해 없는 것만 찾기보다 지역을 온전히 지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며 “나와 잘 맞는 도시를 골라 많이 경험해보고 내려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춘천시, 33개 청년정책으로 성장과 정착 지원
시는 청년의 성장과 도전, 정착, 연결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가 제공한 청년정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일자리, 교육·직업훈련, 복지·문화·금융, 주거, 참여·권리 등 5개 분야 33개 사업에 약 236억원을 편성했다.

청년 행정체험과 청년도전지원사업으로 진로 탐색을 돕고, 근화동396 청년창업공간을 통해 창업 기반을 지원한다. 청년월세와 청년 디딤돌 2배 적금 등 주거·자립 지원도 포함됐다. 청년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통한 참여·소통을 넓히고, 흩어진 정책정보를 모아 맞춤형으로 안내하는 청년정책 통합플랫폼 ‘C-HUB’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청년정책 추진단을 중심으로 조정한다. 시장과 부시장, 관련 부서, 사회혁신센터 등이 참여해 정책 방향을 정하고 협업을 강화한다. 지난 8월 위촉한 청년미래보좌역을 통해 민간의 현장 경험을 정책에 반영하고, 청년 대상 정책간담회와 분야별 현장 소통으로 청년들의 제안이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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